연해주, 새로운 탈북창구 되나

  • 입력 2004년 10월 31일 17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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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새벽(현지시간) 러시아 극동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미국 총영사관에 북한인 1명이 들어와 정치적 망명을 요구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총영사관은 이 북한인이 영내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으나 상세한 상황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연해주에서 북한인이 외국 공관을 통해 탈북을 시도한 것은 처음이다.

지난주 연해주의 북한 노무자 45명이 작업장을 이탈해 2300㎞ 떨어진 캄차카 반도로 탈출했던 사실이 밝혀지는 등 최근 이 지역 북한 노동자에 대한 통제가 급격히 약화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연해주 지역이 대량 탈북의 새로운 창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붕 통해 진입=이 북한인은 총영사관 건물과 인접한 아파트의 비상계단으로 올라가 지붕을 통해 총영사관 경내로 들어갔다. 그를 발견한 경비원이 지붕에 올라가 끌고 내려왔으며 이 과정에서 별다른 저항은 없었다.

앞서 20일 북한인 1명이 총영사관에서 멀지 않은 블라디보스토크 신문사로 들어와 망명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과거 미국 총영사관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탈출한 동료가 있었다"며 미국 기자와 연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신문사측이 "직접 미국 총영사관에 도움을 청하라"고 조언하자 "그것은 너무 위험하다"며 이를 거절하고 신문사를 떠났다.

이 북한인이 현재 총영사관에 머물고 있는 북한인과 같은 사람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각국 공관 긴장=미국 총영사관은 이 북한인의 처리 문제에 대해 "원칙을 세우는 중"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러시아 당국에 인계하는 것은 '북한으로의 송환'을 의미하기 때문에 비인도적이라는 비난을 각오해야 한다. 반면 정치적 망명을 허용하면 앞으로 비슷한 사례가 걷잡을 수 없이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일어난 돌발 사건이어서 미국 외교 당국의 고민이 더욱 크다는 분석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미국 외에도 한국 일본 등 5개국이 총영사관을 두고 있다. 지금까지 외국 외교관들은 '정치적 부담' 때문에 북한 노동자들의 접근을 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연해주에 있는 1500여명의 북한 노동자들은 주로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연해주 정부는 최근 "낮은 임금에 비해 우수한 북한 노동자를 더 받아들여 그 수를 3000명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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