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머물고 있는 그를 지난달 29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앳된 얼굴에 ‘예술가답지 않게’ 단정한 정장 차림이다. 그는 자신을 “그냥 아티스트라고 써 달라”고 했지만, 그의 작품은 ‘그냥 평범한’ 것이 아니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그 자신이 피사체다. 그의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사진 자체보다 그의 ‘특별한’ 퍼포먼스 때문이다. 뉴욕대에서 사진학 석사 과정 중이던 1997년 그는 뉴욕 첼시 지역의 레슬리토코노 갤러리에서 ‘드래그퀸(여장 남자)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첫 사진 전시회를 열었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입술에는 새빨간 립스틱을 칠한 가죽옷 차림의 그가 여장 남자들 무리와 어울려 있는 모습을 담은 스냅 사진들이다.
“색깔이 독특한 집단 속에서의 나를 다루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운이 좋았는지 첫 전시회부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죠. 영화로 치면 감독의 데뷔작이 ‘대박’이 난 거죠.”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주류 언론은 미국인들에게조차 이질적인 무리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간 작은 동양 여자의 모습에 ‘놀라운’ ‘매혹적인’ ‘초인적인’ 등의 수식어를 동원해 극찬했다.
2001년 14번째 ‘힙합 프로젝트’가 나올 때까지 4년 동안 그는 할머니, 히스패닉, 오하이오 주민, 레즈비언, 스윙어(흑인), 여피(Yuppie), 펑크, 스케이트보드족 등 다양한 그룹의 일원으로 변신했다. 2000년에는 한국에서 15세 정도 어린 여고생들과 어울리며 ‘여학생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프로젝트 하나 준비하는 데 평균 3개월 정도 걸립니다. 작업할 그룹을 결정하고, 그 그룹의 구성원들이 사용하는 언어, 패션, 행동 등을 연구해 모방한 뒤 찾아가 일정 시간 함께 지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전문 사진작가가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일 때도 있고 무리에서 새로 사귄 친구일 때도 있다. 그가 각 프로젝트에 쏟는 노력은 때론 상식을 넘어선다. 히스패닉과 어울리기 위해 피부색을 바꾸고 몸무게를 10kg이나 불렸고, 스윙어 프로젝트를 위해 1년간 흑인들에게 춤을 배우기도 했다.
그는 2002년 ‘파트(Parts)’라는 제목의 새 유형의 작품을 시작했다. ‘이전의 프로젝트 작업들이 지겨워져서’란다. ‘파트’는 그가 애인처럼 보이는 남자와 함께 있는 장면에서 남자 몸의 일부분 또는 전체를 오려낸 사진 30여장으로 이뤄졌다. “이성과의 관계에서 자기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잖아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내 모습이 달라지기도 하고요. 이런 생각을 표현한 거예요.”
워싱턴포스트는 올해 7월 8일자 ‘파트’에 대한 리뷰기사에서 “니키 리의 업적이 놀라운 이유는 그가 가볍고 얄팍한 방식으로 (관계와 정체성에 대한) 심오한 생각들을 담아낸다는 사실”이라고 썼다.
8월부터 서울에 머물고 있는 그는 2편의 단편영화를 찍었다. 제목이 ‘남편도 없는 젊은 여자가’ ‘택시를 타고 간 여자는’이다. 전자는 자신처럼 미혼인 여자가 이웃들과 부딪치며 겪게 되는 해프닝을, 후자는 한국에서 여성이 택시를 타면서 느끼는 공포를 다뤘다. 앞으로 장편 영화도 찍을 계획이란다.
“장기적으로 추구하는 작품 세계요? 그런 것 없어요. 그냥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 하는 거죠. 제가 원래 게을러요. 너무 무성의한 대답인가요? 하지만 사실이 그런 걸요.”
○ 니키 리는…
△1970년 경남 거창 출생 △1993년 중앙대 사진학과 졸업 후 미국 유학 △1996년 패션학교 FIT 졸업(패션사진 전공) △1999년 뉴욕대 사진학과 석사 △2000년 광주 비엔날레 북미지역 작가로 참가 △프로젝트 연작:‘드래그퀸’ ‘펑크’ ‘일본인’ ‘관광객’ ‘히스패닉’(이상 1997년) ‘레즈비언’ ‘여피’(이상 1998년) ‘스윙어’ ‘할머니’ ‘오하이오 주민’(이상 1999년) ‘술집 댄서’ ‘스케이트보드’ ‘여학생’(이상 2000년) ‘힙합 소녀’(2001년) △2002년 ‘파트’ 전시회 시작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