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홍권희]‘한표의 가치’ 깨달은 美유권자

  • 입력 2004년 11월 4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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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는 며칠간, 길게는 몇 달간 세계의 눈길이 집중됐던 미국 오하이오주. 대통령선거로 갈가리 찢어진 미국의 상징처럼 보였다. 주도(州都) 콜럼버스엔 지지 후보 이름 판을 꽂아 놓은 집들이 다른 도시에 비해 유난히 많다. 앞집 뒷집이 말도 하지 않을 것 같다. 차 유리창에 붙은 정당 스티커들은 편 가르기 딱지처럼 느껴졌다.

상가에도 정치바람이 불었다. 하이스트리트의 깔끔한 상가 쇼윈도엔 ‘부시-체니’ 또는 ‘케리-에드워즈’ 이름 판들이 널려 있다. ‘정치 중독’ 같았다.

그러나 이런 느낌은 2일 투표가 시작되면서 몇 시간 만에 사라졌다. TV방송 현장 중계가 이어진 콜럼버스인데도 상황은 싱거웠다. 투표소 주변도 너무 조용했다. 정권을 걸고 몇 달간 박빙의 승부를 펼친 곳인데 편싸움은 없다. ‘취재 장소를 잘못 고른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 정도였다.

마지막 한 표를 호소하기 위해 투표소에 나온 자원봉사자들에게 “왜 하필 정치 자원봉사를 하느냐”고 물어보니 대답이 제각각이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존중해 주는 정당이라서 꼭 도와줘야 한다.” “이 후보는 내 아이를 지켜 줄 수 있는데 저쪽 후보는 안 된다.”

투표장은 무척 붐볐다. 투표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많은 시민권자가 처음으로 유권자 등록을 하고, 투표소에 나타났다. 3시간을 기다린 끝에 투표를 마친 메리 피게로(39)의 말에는 자부심이 배어났다. “두세 시간 기다리는 것은 보통이네요. 정치 무관심을 탓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 것이 불과 몇 년 전인데….”

개표가 진행되던 2일 밤, 오하이오주 공화당이 호텔 연회장에서 개최한 ‘나이트 랠리’ 행사. 공화당의 한 간부는 “이번 선거를 통해 오하이오가 민주주의를 제대로 배웠다”고 자랑했다. 주민들이 투개표 과정에 대해 이해하고, 한 표의 가치를 새삼 깨닫고, 자신의 신념과 남의 신념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게 됐다는 것이다.

승부가 판가름 난 3일 낮. 썰렁한 민주당 사무소에서 짐을 꾸리던 한 자원봉사자는 충혈된 눈으로 “위로 카드를 갖고 왔느냐”고 말했지만 그도 패배자로 보이지는 않았다.

콜럼버스=홍권희 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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