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중국계 미국 여성작가 아이리스 창(36)이 권총 자살했다는 소식이 날아든 지 하루 만인 12일 일본 슈에이샤(集英社)가 난징(南京)대학살 만화 연재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창씨는 1997년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난징의 강간’을 발표해 미국 내 대표적 중국계 작가로 떠오른 여성.
캘리포니아 경찰은 11일 그가 이틀 전 승용차 안에서 권총 자살한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존스홉킨스대 석사 출신으로 AP통신과 시카고 트리뷴지에서 일하기도 했던 그는 최근 신경쇠약 증세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확한 자살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가 일본군의 난징 함락(1937년 12월 13일) 기념일을 한달여 앞둔 어느 날 권총 자살했다는 사실 외엔….
공교롭게도 그의 자살과 거의 동시에 일본 국수주의 세력은 ‘또 다른 난징학살’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일본 최대 주간만화지 ‘영점프’를 발행해 온 슈에이샤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난징대학살을 묘사한 만화의 연재를 중단하고 논란이 된 학살 장면은 향후 단행본 발행 때도 삭제할 것이라고 발표한 것.
전말은 이렇다.
‘나라가 불탄다’는 제목의 이 만화 연재는 2002년 시작됐다. 1920년대를 배경으로 시작된 만화는 일제가 침략전쟁을 일으키는 대목이 나간 11월 4일자를 끝으로 중단됐다.
이 만화는 전쟁이란 무엇인가, 일본인은 누구인가를 주제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수주의 단체는 9월 16일자와 22일자에 난징학살을 묘사한 내용이 등장하자 가두선전 차량을 동원해 출판사 앞에서 연일 성토대회를 벌였다. 이후 10월 1일까지 약 370건의 항의전화와 팩스가 출판사에 날아왔고 일부 국회의원이 출판사를 항의 방문했다.
국수주의 단체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한 대목은 △일본군이 중국군을 한 줄로 세워놓고 칼로 목을 치는 장면 △중국군과 민간인을 향해 일본군이 일제 사격을 하는 장면 △손이 뒤로 묶인 포로를 일본군이 총검으로 살해하는 장면 등이다.
국수주의 단체는 “난징학살은 중국이 날조한 것인데 사실인 것처럼 만화를 그려 일본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사진으로 남아 있는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국수주의 세력은 “사진도 조작됐다”며 억지를 부리고 있다.
만화 작가는 ‘샐러리맨 긴타로’ 등으로 유명한 모토미야 히로시. 그는 초기에 간행된 단행본 서문에서 마치 이번 사태를 예견이라도 한 듯 “작품에 묘사한 1920년대 중후반의 일본과 현재가 너무나 흡사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디어 비평 월간지 ‘쓰쿠루(創)’의 시노다 히로유키(篠田博之) 편집장은 최근 도쿄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만화 작품이 연재중단 사태에 이른 것은 매우 상징적”이라면서 “앞으로 난징사건 자체가 금기시될지 모른다”며 착잡해했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난징대학살:
일본군은 1937년 12월 13일 중국 국민당 정부의 수도 난징을 함락했다. 이때를 전후해 중국군 포로와 민간인 등 30만명이 살해된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군인들의 증언과 난징시 일대에서 12만여구의 시신을 매장한 기록 등이 남아 있다. 당시 일본군 책임자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 육군대장은 종전 후 전범으로 교수형을 당했다. 중국은 1986년 난징학살기념관을 세웠으며 매년 12월 13일 추도식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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