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서도 30여 명이 모여 아파트 꼭대기를 주시하고 있었다. 뉴욕자연보호단체 ‘오두본’의 E J 맥애덤스 사무총장이 활짝 웃으며 발표했다.
“여러분의 성원 덕분에 ‘페일 메일’이 둥지를 되찾았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둥지에서 그들 가족을 만날 수 있습니다. 페일 메일을 지원하기 위한 성금이 세계 각국에서 1만 달러 이상 모였습니다.”
페일 메일은 이 아파트 12층에 11년째 둥지를 틀고 사는 붉은꼬리매. ‘엷은 깃털을 가진 수컷’이란 의미의 이름이 붙었다. 미국 공영TV PBS에서 방영됐던 프레데릭 릴리엔 씨의 ‘페일 메일’이라는 다큐 영화 주인공으로 이름이 알려진 지 오래다.
평화롭던 페일 메일 가족에게 사건이 터진 것은 이달 7일. 아파트 주민회의 결정에 따라 인부들이 둥지를 철거해 버린 것이다. 둥지에서 떨어지는 먹이 찌꺼기와 분비물이 아파트 입구를 더럽힌다는 이유였다.
‘페일 메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매일 오후 아파트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아파트 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CNN의 유명 앵커 폴라 잔 씨의 남편인 아파트 주민회장 리처드 코언, 오두본의 맥애덤스 사무총장, 뉴욕시 관계자가 3자회담을 연 끝에 주민들은 원상복구를 약속했다. 둥지 바로 아래에 분비물을 막기 위한 받침대를 설치하는 조건이었다.
23일 둥지가 다시 만들어졌고 때마침 아파트 인근에 날아든 페일 메일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다큐 제작자 릴리엔 씨는 “한국에서도 이 영화가 방영됐느냐”고 관심을 보이면서 “오늘만큼 기쁜 날이 없었다”고 말했다.
환영행사에 참여한 한 주민은 “복구된 둥지는 페일 메일에게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이라며 기뻐했다.
뉴욕=홍권희 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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