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지진·해일]美WP기자 ‘스리랑카의 악몽’

  • 입력 2004년 12월 28일 00시 29분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마이클 도브스 기자는 26일 평온한 스리랑카의 해변에서 아침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몰아친 해일은 ‘상상을 뛰어넘는 공포’ 자체였다. 도브스 기자는 당시 상황을 “마치 노아의 방주를 목격하는 듯했다”고 회고했다. 다음은 워싱턴포스트에 게재된 당시 현장 경험담 요약.

형이 운영하는 스리랑카 해변 리조트 근처에서 아침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모든 것이 평온했다.

그때였다. 형이 내게 고함을 질렀다. “돌아와, 바다에서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

어리둥절해 하는 내 주변의 수위가 놀랄 만한 속도로 높아지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해변으로 수영해 가면서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과 성난 듯 높아지는 파도의 상반된 이미지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떠올랐다. 나는 방주 대신 떠내려가는 보트를 잡아 해변으로 노를 저었지만 다시 빠른 속도로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마치 바다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혼신의 힘을 다해 겨우 해변에 닿으니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해변에 있던 아내와 극적으로 만났다. 아내는 밧줄을 잡고 나무 위로 대피했다고 말했다.

아직 물에 잠긴 근처 숙소에서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빠져나오고 있었고 죽은 상어 몇 마리와 애완동물들, 파괴된 보트 잔해가 해변에 널려 있었다.

현재 이곳은 물도 전기도 공급되지 않는다. 나와 가족은 크리스마스 저녁 때 먹다 남은 음식으로 겨우 허기를 달래고 있다. 하지만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요미우리기자 ‘몰디브의 공포’▼

“말레 공항의 활주로가 순식간에 바닷물에 잠겨버렸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의 이쓰카 게이코(飯塚惠子) 기자는 해일로 섬나라 몰디브의 말레 공항이 물에 잠기던 긴박한 순간을 전했다.

몰디브에서 휴가를 보낸 이쓰카 기자는 동남아 강진의 영향으로 해일이 말레 공항을 덮칠 때 마침 출국 수속을 밟고 있었다.

“재해 발생으로 활주로가 폐쇄됐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이쓰카 기자는 영어 TV 방송을 보고서야 거대한 해일이 발생한 사실을 알았다.

그는 26일 아침 지진의 진동을 느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공항으로 가는 배를 탔다. 파도가 거칠고 배가 이상하게 많이 흔들렸다.

몰디브는 진앙에서 2500km 떨어진 곳이지만 가장 높은 곳이 해발 1.8m밖에 안 되는 나라. 해일은 순식간에 1200개의 섬으로 이뤄진 몰디브의 전 국토를 덮쳤다. 인구 30만 명에 불과한 나라에서 수천 명이 집을 잃고 사망자도 다수 발생했다.

전날 밤 묵었던 호텔에 전화를 걸자 여자 종업원이 흥분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바닷물이 맹렬한 기세로 높아져 어디까지 올라올지 무서워 죽을 지경이었어요. 손님이 섬을 떠나고 불과 30분 뒤에 일어난 일이에요.”

공항을 나와 해변을 둘러보니 배가 해안까지 올라와 있었다. 휴대전화가 불통이어서 관광객들이 공중전화로 몰렸지만 전화는 걸리지 않았다. 수위는 높아지는데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상황을 알 수 없어 주민도, 관광객도 공포에 사로잡혔다.

몰디브는 평소에도 수몰 가능성이 제기돼 온 나라. 원인은 다르지만 이번 해일은 주민들에게 수몰의 공포를 실감나게 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