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원재]各國 ‘쓰나미 지원금’ 공수표 안되길…

  • 입력 2005년 1월 7일 17시 35분


2003년 12월에도 세계 각국은 앞 다퉈 재난 지원을 약속했다. 이란의 고대 유적도시 밤 시에 강진이 발생해 3만5000여 명이 숨지고 가옥 수천 채가 무너졌을 때다.

당시 공식 집계된 지원 약속 액수는 10억 달러를 훌쩍 넘었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 국교를 단절한 미국도 군용 수송기를 띄워 구호물자를 전달했다.

1년이 지난 지금 이 돈은 약속대로 지원됐을까. 이란 정부에 따르면 실제로 건네진 돈은 1700만 달러에 불과하다.

남아시아 지진해일 피해가 커지자 국제사회는 경쟁적으로 지원 계획을 발표해 뜨거운 인류애를 보여 줬다.

새해 첫날 일본은 “5억 달러를 무상 지원하겠다”고 선수를 쳤다. 이에 독일은 지원금을 5억 유로(6억8000만 달러)로 늘렸다. 이어 호주가 7억6000만 달러가 넘는 금액을 제시해 1위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유엔과 국제구호단체들은 부자 나라들의 ‘통 큰 선심’이 식언(食言)이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얀 에옐란 유엔 사무차장은 “약속은 많지만 돈을 받아내기는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이란의 지진 피해 주민들이 1년이 지난 지금도 임시 거처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도 거론했다.

최대 피해국인 인도네시아 정부는 ‘남아시아 지진 부흥기금’을 창설해 유엔이 구호자금을 직접 관리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란의 전례를 감안할 때 현실적 방안이라는 반응이 많다. 하지만 상당수 국가가 개별 지원 방식을 고집하고 있어 성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외교 전문가들은 “유엔을 통해 구호금을 내면 도와 줬다는 생색을 내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인도적 지원이라는 명분 뒤에는 국익 우선의 논리가 작용하는 게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이다.

사상 최대 규모라는 남아시아 지진해일 구호금이 ‘공수표’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도덕적 책무다. 고통 받는 이재민들을 진정으로 돕는 길이기도 하다.

60만 달러에서 출발한 한국의 지원금은 몇 차례 수정을 거쳐 5000만 달러로 늘었다. 한국의 약속이 경쟁에 편승한 ‘립 서비스’에 그치지 않고 피해국 국민에게 ‘한국은 진정한 친구’라는 평가를 받는 결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박원재 도쿄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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