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관계자들의 회고처럼 지난해 EU는 많은 일을 벌였다. 10개국을 새로 받아들여 회원국이 25개국으로 늘었고, EU 헌법을 제정했다. EU 의회와 EU 집행위원회를 새로 구성했고, 논란 끝에 이슬람 국가인 터키와 가입 협상을 벌이기로 했다. 이라크전쟁을 놓고 미국과 첨예하게 대립했으며 내부적으로는 이슬람권이 연루된 크고 작은 충돌이 빚어졌다.
올해 EU는 지난해만큼 크게 벌일 사안은 없다. 대신 벌여 놓은 일을 수습하는 과제가 쌓여 있다.
▽실질적 통합 이룰 수 있을까=외형이 커진 EU를 실질적으로 통합하는 열쇠는 EU 헌법이다. 경제, 외교 등 이해가 엇갈리는 현안을 순조롭게 조정하기 위해서는 ‘전범’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U 헌법은 내년 발효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인 많은 회원국에서 EU 통합에 대한 회의론이 갈수록 커져 시행 여부는 단정하기 어렵다.
2월부터 EU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나라는 10개국. 스페인, 아일랜드는 비준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프랑스, 네덜란드의 투표 결과는 장담하기 어렵다.
난항이 예상되는 국가의 정상들은 연초부터 국민들에게 ‘협조’를 호소하고 있다. 25개 회원국 가운데 지금까지 헝가리와 리투아니아만이 의회 투표를 통해 헌법을 수용했다. 한편에선 EU 확대 작업도 계속돼 크로아티아가 3월 가입협상을 시작하고 4월에는 불가리아, 루마니아가 가입 협정에 서명할 예정이다.
▽갈등 봉합도 과제=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6일 각국 대사들과 신년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올해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서로 신뢰하는 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라크전쟁으로 불편해진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 것. 그는 이달 중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부시 대통령도 지난해 재선에 성공한 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들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맺어 미국과 유럽의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입증하듯 재선 이후 첫 해외 순방지로 EU 지역을 선택해 2월 벨기에의 EU 본부를 방문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부시 대통령의 집권 2기에는 대서양에 순풍이 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내부적으로 EU는 이민족 간 갈등을 봉합하는 데 주안점을 둘 예정이다. 특히 지난해 프랑스의 히잡 착용 금지법, 네덜란드의 테오 반 고흐 감독 피살 등으로 고조된 반(反)이슬람 정서를 해소하는 게 큰 숙제다.
각국 정부는 쪼개진 정서를 이어 붙이려 각종 정책을 동원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오히려 반이슬람 정서가 ‘이민자 유입 반대’로 확산되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곳간부터 채워야=EU 통합, 이민자 유입 반대 정서가 팽배한 데는 경제상황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깔려 있다. EU 통합은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고,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면 자국민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곳간’이 비어 있으니 ‘인심’이 나지 않는 형국이다.
하지만 달러화에 대한 유로화의 강세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아 수출 비중이 큰 유럽 경제는 올해도 고전이 예상된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해 올해 상반기 EU 의장국인 룩셈부르크의 장클로드 융커 총리는 재임 기간 중 경제에 ‘다걸기(올인)’하겠다고 다짐했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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