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기자의 올 댓 클래식]‘라데츠키’가 빠진 이유

  • 입력 2005년 1월 18일 17시 36분


“신사 숙녀 여러분.”

흠칫 놀랐다. 국내 발매에 앞서 미리 입수한 2005년 빈 신년음악회 CD(도이체 그라모폰 발매)를 듣고 있는 중이었다. 공연 실황 중반을 갓 넘긴 때였다. 지휘자의 신년 인사가 나오려면 멀었는데…. 트랙 정보를 살펴보았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이사장 클레멘스 헬스베르크 박사의 담화”라고 적혀 있었다.

“지난해 말 남아시아 해일의 참화가 세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올해 지휘자 로린 마젤을 비롯한 수천 명이 빈 필에 11만5000유로(약 1억5000만 원)를 기부하셨습니다. 이 성금을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 ‘용욱 리’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용욱 리라니…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이종욱 박사의 이름에 있는 ‘Jong’을 독일어식으로 읽은 것이겠지. 약간은 어깨가 으쓱해졌다. 빈 신년음악회 실황 영상물을 볼 때마다 청중 곳곳에 점점이 박혀 있는 기모노 차림의 일본인 때문에 그동안 심기가 편치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한국 사람은 다 어디 간 거야?’

그러던 차에, 한국인이 당당하게 빈 필하모니 황금홀에 서서 빈 필 이사장과 악수하는 모습을 올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 놀라운 뉴스는 그 뒤에 터져 나왔다.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올해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왈츠로 콘서트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내년부터는 다시 즐거운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콘서트가 끝나게 되길 바랍니다.”

라데츠키 행진곡. 우리나라에서도 신년음악회를 비롯한 여러 축제적 성격의 콘서트에서 마지막 곡으로 애용되는 작품이다. 관객들이 손뼉으로 리듬을 맞추고, 지휘자가 돌아서서 ‘손뼉 연주’를 지휘하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빈 신년음악회의 상징처럼 된 이 행진곡이 올해는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청중은 아쉬움의 탄성 대신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냈다.

기부금 때문이 아니더라도, 올해 65년째를 맞는 빈 신년음악회는 오스트리아인들이 세계에 보내는 넉넉한 마음의 선물이다. 매년 40개국 이상에 방송되는 이 콘서트를 올해도 전 세계에서 1억200만 가구가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 콘서트를 방영하는 40여 개국 명단에서 우리나라가 사라져 버렸다. 이종욱 박사가 성금을 전달받는 모습은 머지않아 수입될 DVD에서나 만나게 될까.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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