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신간]‘漢流’붐 주인공 明末문인 원굉도 전집 첫 번역

  • 입력 2005년 1월 26일 17시 58분


조선후기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명나라 말기의 문인 원굉도의 문학전집 역주서를 낸 심경호 고려대 교수. 박주일 기자
조선후기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명나라 말기의 문인 원굉도의 문학전집 역주서를 낸 심경호 고려대 교수. 박주일 기자
이백, 두보, 한유, 도연명, 소동파….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친 중국 문인들이 많지만 명나라 말엽의 문인 원굉도(袁宏道·1568∼1600)를 아는 한국 사람은 많지 않다.

원굉도는 도덕과 명분에 얽매이지 않는 자아와 독창적 개성을 강조한 작가였다. 허균,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 이덕무, 유득공 등 17,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은 그를 흠모하는 동시에 극복하려고 애썼다. 허균은 꿈에서 원굉도를 보았다고 좋아했고,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원굉도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반산(盤山)을 오르지 못하는 것을 한탄했고, 정약용은 국화꽃을 등잔불에 비춰 만들어지는 환영을 보면서 시를 지었던 원굉도를 좇아 시작(詩作) 모임인 ‘국영시회(菊影詩會)’를 만들기도 했다.

또한 조선 후기에 척독(尺牘·개인적 심경을 짧은 문장에 표현한 편지)이 유행한 것도 인간의 정감(情感)을 중시한 원굉도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미쳐야 미친다(불광불급·不狂不及)’로 요약되는 조선 실학자들의 마니아적 경향에도 말 키우기와 귀뚜라미 싸움 등에 광적으로 몰두한 사람들의 ‘전(傳·전기)’ 작품을 많이 남긴 원굉도의 영향이 컸다. 원굉도의 문학작품은 조선 후기 지식인들을 사로잡은 ‘한류(漢流)’였던 셈이다.

이처럼 조선시대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원굉도의 문학작품 전집을 역주한 ‘역주 원중랑집’(전 10권·소명출판)이 한중일 3국을 통틀어 한국에서 처음 나왔다. 중랑(中郞)은 원굉도의 자(字). 이 어려운 작업을 주도한 주인공은 고려대 한문학과 심경호 교수(50)다. 심 교수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의 동서양 학술 명저 번역지원을 받아 제자들과 함께 번역사업을 최근에 마쳤다.

심 교수는 “42세에 요절한 원굉도는 당대의 주류 문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청나라 때 중국의 주요 저서를 종합한 사고전서(四庫全書)에도 그의 작품이 포함되지 못했다”면서 “조선 정조 때는 그의 작품이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담긴 강렬한 자의식은 이후 한중일 3국이 근대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게 심 교수의 설명이다.

김시습, 정약용, 박지원 등 조선시대 아웃사이더 사상가들에 천착해 온 심 교수는 원굉도 작품의 번역과 역주를 위해 3년 세월을 매달리는 동안 부친상과 장인상을 함께 겪었다.

“죽음을 초월했다는 모든 주장은 허위라면서 늘 죽음을 의식하고 살라는 원굉도의 말이 절절히 다가왔습니다. 당대에는 비주류였던 그가 정파를 초월해 ‘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 작가’가 된 것에는 시대를 초월한 바로 그 진정성 때문이 아닐까요.”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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