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청은 전설적인 영상수집가인 아베 요시시게(安部善重) 씨가 9일 81세를 일기로 상속인 없이 타계함에 따라 그가 남긴 5만여 점의 소장 필름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1926년 무성영화로 제작된 ‘아리랑’의 필름은 6·25전쟁 때 불에 타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1970년대 이후 고인이 소장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현지 언론은 그의 자택에 보관 중이던 소장 작품 목록에서 ‘아리랑/9권/현대극’이라는 타이틀을 확인한 바 있다.
고인도 생전에 자신이 ‘아리랑’을 소장하고 있음을 시사했지만 공개를 거부해 확인되지는 않았다.
이에 따라 남북한의 영화 관계자들이 고인에게서 ‘아리랑’ 필름을 되찾기 위해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북한 측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산하 총련 영화제작소장을 지낸 여운각 씨(78)가, 한국 측은 다큐멘터리 작가인 정수웅 씨(62)가 그를 찾아가 건네줄 것을 호소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고인은 생전에 “‘아리랑’은 식민지시대의 반일 영화여서 일본인으로서는 생각할 점이 있다”며 “그러나 내놓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며 남북이 통일되면 평화를 위해 내놓겠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예술품의 경우 상속인이 없으면 법적 절차를 거쳐 문화청에 맡겨진다.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은 문화청으로부터 고인의 소장 필름을 넘겨받아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문화청 관계자는 “필요하다면 한국의 전문가에게도 협력을 요청해 조사하겠다”며 “‘아리랑’이 한국 영화의 뿌리인 만큼 발견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리랑’은 3·1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고문당한 대학생이 귀향해 가족을 괴롭히는 지주를 살해하고 경찰에 체포되는 내용으로 연행되는 마지막 장면에 주제가인 아리랑이 흘러나온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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