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날 오후 9시 17분경 코네티컷 주 록스버리 자택에서 지병인 심장병으로 운명했다.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들은 11일 공연에 앞서 극장 앞의 전등을 껐다 켜면서 그를 추모했다.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일약 문단의 주목을 받은 그는 당대의 섹스심벌이었던 메릴린 먼로와 결혼해 세계인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밀러는 34세였던 1949년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세일즈맨의 죽음’을 올리면서 단번에 미국 문단의 유명인사가 됐다. 이 작품은 그해 퓰리처상, 뉴욕 드라마 비평가상, 토니상을 받아 3관왕을 휩쓸었다.
1956년에는 먼로와의 결혼으로 더 유명해졌다. 세간에서는 먼로와의 결혼을 ‘지성과 육체의 세기적 결합’이라고 표현했으나 그는 “2세가 먼로의 머리와, 나의 육체를 닮는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농담을 던졌다. 먼로와는 5년 만에 헤어졌으며 1987년 자서전 ‘타임벤즈(Timebends)’에서 먼로를 ‘불행했던 어린 시절의 망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끝내 파멸하는 여성’으로 그렸다.
1915년 뉴욕에서 유대계 중류 가정의 3남매 중 둘째아들로 태어난 밀러는 소년시절 대공황으로 집이 몰락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접시닦이, 사환, 운전사 등을 전전했다. 고학으로 미시간대 연극과를 졸업한 뒤 뉴욕에서 생계를 위해 라디오 드라마를 쓰면서 남는 시간에 희곡 창작을 했다.
그는 직업 일선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을 배워 훗날 여러 작품에서 이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물질만능주의와 세속적 성공에 사로잡혀 결국 희생물이 되는 평범한 영업사원 윌리 로먼의 삶을 그린 작품 ‘세일즈맨의 죽음’이 대표작이다.
잊혀졌거나 간과돼 왔던 사회문제를 작품을 통해 전면에 부각시켰던 그는 ‘미국의 양심’으로 인식됐다. 유진 오닐, 테네시 윌리엄스와 함께 20세기 미국의 위대한 극작가로 꼽히는 그는 국제펜클럽 회장으로 활동하며 옛 소련과 동유럽권 작가들을 위해 투쟁하기도 했다.
뉴욕=홍권희 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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