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이 기리는 윤동주 60주기

  • 입력 2005년 2월 14일 13시 54분


윤동주 시인.동아일보 자료사진
윤동주 시인.동아일보 자료사진
16일은 민족시인 윤동주가 만 27세 2개월의 짧은 생애를 마친 지 60주기.

그가 생애 최후를 맞은 규슈(九州)의 후쿠오카(福岡)형무소는 현재 미결수를 가두는 구치소로 바뀌었고 부지의 상당 부분은 공원, 시민회관 등으로 변모했다.

후쿠오카시 사와라(早良)구 모모치(百道)의 구치소 담 밖 소공원에서 13일 오후 일본인과 한국인 등 4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조촐한 윤동주 시인 60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후쿠오카 시민들로 구성된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이 주도한 행사로 올해가 열 번째. 교사 주부 의사 회사원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기에 기일 직전의 일요일에 식을 가져왔다. 일본인들의 연례 추도식 소문에 자괴감을 느끼고 찾아온 대구 한의대생과 현지 유학생 몇몇의 모습도 보였다.

이들은 꽃 한 송이씩을 헌화하고 묵도를 한 뒤 고인의 시 한 편을 낭송하거나 마치 말을 걸 듯 학사모 차림의 영정을 우러러보며 추도의 정을 담은 한마디를 바쳤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람에 이는 잎새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서투른 한국말로 고인의 대표작 '서시(序詩)'를 암송하며 칠순의 일본 여성은 순수한 영혼을 가진 청년이 군국주의 제물이 되어야 했던 시대의 비운에 끝내 눈물을 흘렸다. 초로의 남성은 "올해 내 맏아들도 고인이 숨진 때처럼 27세"라며 울먹이기도 했다.

호리타 히로지씨(堀田廣治·67)는 "자위대 해외 파견, 평화 헌법 개정, 애국심 교육 등으로 요즘 일본 사회는 국민을 다시 전장으로 내몰 준비를 착착 진행 하고 있다"면서 "이런 시대에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할 때마다 고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비분강개했다.

이 모임은 95년 12월 만들어졌다. 후쿠오카형무소 부근 태생인 니시오카 겐지(西岡健治·60) 후쿠오카현립대 교수가 연세대 교정에서 윤동주 시비를 보다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시인이 운명한 사실조차 모르고 지내온 데 대한 반성과 참회의 심정으로 만들었다.

10년 가까이 매달 한 차례 꼴, 100여차례 모였다. 한 편의 시를 정해서 읽고, 감상을 나누며 토론한 결과를 정리한 '회보 2호'가 이날 헌정됐다.

추도식은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오'를 합창하는 것으로 1시간여 만에 끝났다. 멀리 북간도의 고향과 부모형제를 그리며 청년 유학생 윤동주가 콧노래로 자주 부른 노래였다.

윤동주 시인이 운명할 당시만 해도 한적한 교외였을 형무소 일대는 이제 도심에 편입돼 구치소는 4~5층 아파트로 둘러 쌓여있었다. 주민들은 겨울날답지 않게 따사로운 햇살에 무심히 빨래를 널뿐 담장 밖 추도식 모습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예년에는 구치소 담에 종이 한 장 못 붙이게 쏜살같이 달려와 감시하던 교도관들 모습도 요즘 담장 개수 공사가 진행중이라서인지 이날은 보이지 않았다.

일행은 형무소 부지에 세워진 시민회관내 작은 방으로 옮겨 '윤동주 평전'을 펴낸 작가 송우혜씨(宋友惠)의 특별 강연을 듣고 토론을 벌였다.

"고인이 강제로 맞았던 주사는 생체실험으로 악명을 떨친 관동군 산하 속칭 이시이(石井) 부대, '731 부대'가 실험했던 혈장 대용 생리 식염수였을 것입니다. 당시 규슈제국대 의학부 의사들이 연구에 가담해 여기 수감된 한국의 독립운동가들도 생체실험 대상이 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몇 해 전부터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에 동참한 의사 다케다 마사카쓰(武田正勝)씨의 폭로에 장내는 숙연해졌다. 이어 바로 이 시민회관 자리가 생체실험 현장일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에 참석자들은 60년전 참혹한 역사를 어제일 처럼 생생히 느끼며 전율했다.

회원인 니시니혼(西日本)신문 이데 사쿠(井手俊作)논설위원은 "한일 양국 우정이 깊어지려면 역사인식의 차를 메우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하면서 "윤동주의 삶과 죽음을 되새겨봄으로써 양국의 바람직한 미래상이 찾아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후쿠오카=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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