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發 달러매각說 뉴욕시장 출렁

  • 입력 2005년 2월 23일 18시 07분



23일 서울 외환시장이 열리자마자 원-달러 환율이 폭락한 단초를 제공한 것은 외환당국인 한국은행이다.

보유외환 투자대상 통화를 다변화하겠다는 한은의 자료가 외신과 외국 투자은행을 거치면서 일파만파로 증폭돼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이른바 ‘나비효과’를 발생시킨 것.

사태가 커지자 한은은 23일 급히 해명자료를 내고 진화에 나서는 한편 재정경제부 등과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한은의 날갯짓에 뉴욕에는 태풍=한은은 24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업무보고를 앞두고 미리 배포한 자료를 통해 “외환보유액 수익성 제고를 위해 비(非)정부채 투자를 확대하고 투자대상 통화도 다변화하겠다”고 밝혔다.

한은은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고 했지만 외신과 국제 금융시장의 반응은 달랐다.

즉 ‘투자대상 다변화’라는 표현은 전에도 있었지만 ‘투자대상 통화 다변화’ 표현은 처음이라는 것.

블룸버그와 로이터 등 세계적 통신사들은 “한은이 달러화를 매각하고 다른 통화를 사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타전했다.

이를 받아 JP모건 등은 “한은이 보유외환을 다양화할 수도 있다는 것은 ‘의미 있는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는 종전의 태도와 대조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22일(현지 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화는 일본 엔화와 유로화에 대해 지난 주말보다 각각 1.4%씩 급락하는 기록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금융시장 쇼크 책임은 한은에 있나=한은은 세계 금융시장에 엄청난 파장이 생기자 23일 ‘달러 매각설은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의 자료를 급히 배포했다.

외국 투자은행 등 주요 외환시장 참여자에게는 일일이 한은의 입장을 설명했다.

한은 이영균(李英均) 부총재보는 “투자대상 ‘통화’ 다변화라는 표현은 향후 추가로 들어오는 외화자산에 대해서는 굳이 미 달러화를 고집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외국계 금융회사 대표는 “환율 문제가 민감한 시기에 확대 해석될 소지가 있는 표현을 쓴 것은 의도가 없다면 경솔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 임태섭(林泰燮) 한국지사장은 “한은이 투자대상 통화를 다변화하겠다는 것은 원론적으로 당연한 얘기”라며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세계 4위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크기 때문에 국제 금융시장이 민감하게 해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鄭永植) 수석연구원은 “달러화를 팔 기회만 보고 있던 해외 외환딜러들이 한은 자료를 달러화 처분의 구실로 삼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고 밝혔다.

▽외환당국의 딜레마=환율 급락으로 외환당국에도 비상이 걸렸다. 재경부는 23일 강력한 구두 개입에 나섰다.

재경부 최중경(崔重卿) 국제금융국장은 “최근의 환율 움직임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있다”면서 “환율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면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해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로 해석했다.

한은 관계자는 “정부가 채권시장 불안 가능성 때문에 외환시장 안정용 국채를 발행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필요하다면 발권력을 동원해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당국이 개입할 수 있는 여력은 별로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재경부와 한은, 금융감독위원회는 이날 긴급 금융협의회를 열고 외환시장 안정대책을 논의했다. 그러나 다음 달에는 외환시장 안정용 채권을 발행하지 않기로 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시장금리가 아직 불안정한 점을 고려한 것”이라며 “하지만 환율이 계속 떨어지면 외환시장 안정용 채권을 발행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김승진 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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