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의 출판업은 유럽 전체에서 간행되는 책의 절반 이상을 제작할 만큼 번성했다. 교황의 위세가 서슬 푸르던 시절에도 베네치아에선 어떤 ‘불온한’ 내용도 책으로 펴낼 자유가 있었다. 가톨릭교회에 반기를 든 사람에게 ‘베네치아로 가라’는 말은 사상적 도피처를 찾아 떠나라는 뜻이었다. ‘말’과 ‘생각’의 자유가 문화를 꽃피운 것이다. 1787년 이곳을 찾은 괴테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고귀함으로 가득 차 있다”고 찬사를 보낸다.
▷베네치아는 황량한 개펄 위에 나무말뚝을 무수히 박고 그 위에 세운 도시다. 낭만과 멋으로 가득 찬 이 도시가 치열한 생존투쟁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관광객들은 잊어버리기 쉽다. 1966년 이 도시에 갑자기 높은 조류가 덮치는 재앙이 발생했다. 이때 각국은 베네치아를 구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세계가 베네치아에 진 문화적 부채를 갚을 기회가 왔다며…. 요즘 베네치아에 물이 차는 날은 1년 중 200일 이상이다.
▷베네치아를 해수면 상승과 지반 침하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구체화되고 있다. 높은 조류가 발생할 때 수중갑문을 들어올려 바닷물 유입을 막는 ‘모세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베네치아의 초기 개척자들이 혼자 힘으로 바닷물과 싸웠다면 이젠 전 세계가 공동전선을 펴고 있다. 사람은 가도 그가 남긴 문화는 영원하다는 격언이 실감난다. 문화와 지식이 각광받는 21세기는 ‘뉴 르네상스’로 불린다. 한국도 문화국가가 욕심나고 베네치아가 부럽다면 르네상스 역사서를 다시 펼쳐보길 권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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