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쓰나미 상처’ 달랜 모차르트 선율

  • 입력 2005년 2월 27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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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필의 음악감독 사이먼 래틀 경. 동아일보 자료 사진
베를린 필의 음악감독 사이먼 래틀 경. 동아일보 자료 사진
독일 베를린의 클래식 음악 팬들은 26일 하룻밤 사이에 명랑, 슬픔, 장엄함을 두루 경험했다. 음악이라는 위대한 대리체험을 통해서였다.

베를린 필하모니 홀에서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이 주관하는 ‘남아시아 지진해일 자선 콘서트’가 열린 이날, 음악감독 사이먼 래틀 경(卿)이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모차르트의 ‘3대 교향곡’으로 불리는 교향곡 39번 E장조, 40번 g단조, 41번 C장조 ‘주피터’를 잇달아 연주했다. 열광한 청중은 여섯 차례나 지휘자를 거듭 무대 위로 불러냈고, 갈채는 악단원이 모두 퇴장한 뒤에도 3분 동안이나 계속됐다.

세계 정상의 교향악단으로 불리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정기연주회 중 매년 1회를 대통령이 주관하는 자선음악회로 치르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지난해 말 남아시아 지진해일로 수백 명의 독일인이 숨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음악회에 쏟아진 독일인들의 관심은 더욱 컸다. 연주 시작 전 무대 위에 임시로 마련된 연단 앞에 선 쾰러 대통령은 거듭 ‘국가 간 연대’를 강조했다. 그는 남아시아 못지않은 지진해일 피해가 발생했으면서도 구호활동의 손길이 상대적으로 덜 미치고 있는 아프리카 소말리아에 공연 수익금을 전달하겠다고 밝혀 객석으로부터 커다란 박수갈채를 받았다.

모차르트 교향악의 정수를 보여준 이번 프로그램은 2002년 베를린 필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뒤 최근까지 대부분의 콘서트를 ‘특별 기획연주’처럼 꾸미고 있는 래틀 경의 색깔이 돋보이는 기획이었다. 모차르트가 1788년 여름 작곡한 마지막 세 곡의 교향곡은 몇 주에 걸쳐 벼락 치듯 써내려간 곡들임에도 각각 명쾌함과 생동감, 가슴 시린 우수(憂愁), 고대의 신전과도 같은 장엄함이 돋보이는 개성 강한 작품들이다.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이 26일 밤 열린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앞서 무대에 올라 “공연 수익금을 소말리아 지진해일 피해 복구를 위해 기증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베를린=유윤종 기자

이날 연주에서는 마치 소편성의 실내악단 연주처럼 들리는 깨끗한 합주력, 작품마다의 고저와 기복을 손금 보듯이 살려낸 래틀 경의 뛰어난 리드가 돋보였다. 제1바이올린만 10명이 참여해 모차르트 교향곡의 연주로서는 다소 큰 편성이었지만, 베를린 필 현악부의 앙상블에는 단 한점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주피터’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에서 호른과 트럼펫의 합주는 마치 파이프오르간처럼 투명하게 들렸다.

종종 장식음(裝飾音)의 처리에서 새로운 해석을 따르고 팀파니의 스틱(채)도 펠트(천)를 덧대지 않은 딱딱한 것을 사용하는 등 원전(原典)연주의 경향도 다소 가미됐지만 래틀 경의 해석은 주관적이고 낭만주의적 면모가 강했다. 악장마다 중간부 말미에서 한껏 숨을 죽여 선율 사이의 대조를 강조한 것은 그 좋은 예였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1월 7, 8일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동아일보와 금호문화재단, SBS 공동주최로 21년 만의 역사적 내한 연주회를 갖는다. 래틀 경의 지휘로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영웅의 생애’ 등을 연주한다.

베를린=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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