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10년 전까지만 해도 스페인은 이탈리아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이탈리아인들은 스페인 사람들을 ‘가난한 이웃’으로 여겼고, 스페인 사람들은 ‘부자 이웃’인 이탈리아를 부러워했다.
최근 들어 상황이 역전됐다. 뉴스위크 최신호는 “이탈리아가 유럽의 강대국 자리를 스페인에 내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이런 상황 변화와 관련해 얼마 전 이탈리아 출신인 로마노 프로디 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에게 “이탈리아는 유럽을 이끄는 중심국가 대열에서 탈락했고 그 자리를 스페인이 대신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라크 대통령의 발언은 1월 최신형 여객기 에어버스 380 공개 행사로 이미 패배감을 맛본 이탈리아 사람들을 또 한번 자극했다. 이 행사에서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는 영국 독일 프랑스 정상과 어깨를 나란히 한 반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
당시 이탈리아 언론들은 “스페인이 이탈리아를 제치고 유럽의 중앙무대에 진출했음을 말해주는 명백한 증거”라고 흥분했다.
양국의 입지가 달라진 것은 경제적 성과 때문. 뉴스위크는 “지난 10년간 이탈리아가 정체하는 동안 스페인 경제는 붐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스페인은 이 기간에 이탈리아의 두 배가 넘는 45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경제 성장률도 유럽 평균보다 높았다. 스페인에서는 빈곤 계층이 줄어드는 반면 이탈리아에선 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탈리아의 경제력이 퇴보한 것은 대표적인 산업인 자동차와 영화의 쇠퇴 때문. 2002년 리라화를 유로화로 전환한 뒤 구매력이 크게 떨어진 것도 이를 부추겼다.
이에 따라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을 구가하던 이탈리아인들의 생활은 더 이상 달콤하지 않다고 뉴스위크는 지적했다. 이탈리아를 떠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하는 시나리오작가 알베르토 마리니는 “이탈리아는 미래를 보는 게 아니라 과거를 보면서 불평만 늘어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더불어 최근 스페인이 국제무대에서 잇따라 이탈리아를 누르자 이탈리아에선 ‘국가 정체성 위기’라는 자조까지 나오고 있다.
스페인의 사라고사는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를 따돌리고 2008년 세계박람회를 유치했으며 발렌시아는 나폴리를 누르고 세계적 요트대회인 아메리카컵의 2007년 개최지로 선정됐다.
이처럼 양국의 입장이 뒤바뀐 것은 최근의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이탈리아는 산업화를 통해 부자 나라가 됐다. 유럽 통합을 초기부터 주도했다. 반면 40년에 걸친 프랑코 독재에 시달린 스페인은 1986년에야 EU에 가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급속한 사회 경제 변화를 통해 스페인은 활기를 띠었다. 이탈리아의 국내총생산(GDP)은 해마다 추락한 반면 스페인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 왔다. 이탈리아가 패션 산업 사양을 맛보는 동안 스페인의 금융 통신업은 유럽 최대 규모로 성장했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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