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에너지산업 빗장…메이저社 애간장

  • 입력 2005년 3월 3일 18시 08분


최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다. 이라크 사태나 이란의 핵개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프랑스 최대 에너지 기업인 토탈이 러시아 가스회사 노바텍의 지분 25%를 인수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민원’이었다.

‘마지막 남은 에너지의 보고(寶庫)’ 러시아로 진출하기 위한 서방 에너지 메이저들의 필사적인 몸부림이 대통령까지 움직인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오히려 에너지 산업의 빗장을 잠그는 ‘에너지 민족주의 정책’을 강화하고 있어 서방 메이저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우리 자원은 우리 손으로…’=시라크 대통령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노바텍의 지분은 러시아 국영가스공사인 가스프롬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더 이상 외국 기업에 에너지 개발권을 넘겨줄 수 없다는 크렘린의 의지가 강력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자본이 부족해 서방의 투자 없이는 개발이 불가능했으나 최근엔 고유가로 ‘오일달러’를 벌어들여 여력도 생겼다.

유리 트루트네프 러시아 천연자원부 장관은 “사할린Ⅲ 프로젝트 등 올해 확정될 6개 대형 에너지개발사업의 사업권은 러시아 기업이 51%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는 법인에만 주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러시아 진출을 추진 중인 셰브론텍사코와 코노코필립스 등 다국적 기업들은 고민에 빠졌다. 대규모 투자를 하고도 경영권을 보장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러시아로 간다”=하지만 세계 최대의 석유회사인 엑손모빌은 “우리는 러시아 시장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고 있으며 여전히 러시아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기 때문이다. 중동 등 기존의 에너지원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거나 불안한 정세 때문에 안심하고 투자할 상황이 아니다.

러시아는 전 세계 가스 매장량의 33%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엔 원유 부존량도 최대 2000억 배럴로 전 세계 부존량의 10% 이상이라는 추정치까지 나오고 있다. 러시아는 지금도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은 세계 2위의 산유국이자 석유수출국이다.

서방 에너지 메이저들은 내심 “기다리다 보면 결국 러시아도 시베리아와 사할린의 에너지 자원 개발을 위해서는 우리에게 다시 손을 내밀 수밖에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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