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윤이상 예술혼 베를린서 부활한다

  • 입력 2005년 3월 6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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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1917∼1995·사진)의 타계 10주기가 되는 해.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그가 독일 정부의 석방 노력으로 2년 만에 풀려난 뒤 정착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살았던 독일 베를린에는 요즘 그를 기리는 각종 기념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윤이상의 음악은 너무도 독특해서 후배 작곡가들이 그의 음악에 담긴 일부 요소만을 모방하기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역사적 성격을 갖고 있으며, 하나의 전범(典範)으로 작용하고 있지요.”

그가 세상을 떠난 날인 11월 3일부터 5일까지 사흘에 걸쳐 베를린의 연주회장인 ‘콘체르트잘’에서 추모 연주회를 갖는 ‘국제윤이상협회’의 볼프강 슈파러(음악학자) 회장은 1일 베를린 시내의 자택을 찾은 기자에게 윤이상 음악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올해 윤이상 추모행사는 크게 두 축으로 나눠 진행된다. 이 협회 주최의 기념연주회 이외에도 국제문화교류기구인 ‘베를린 세계문화의 집’(대표 한스 게오르크 크놉)이 9월 20∼24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에서 다섯 차례의 콘서트를 갖는다.

1일 독일 베를린의 자택에서 만난 볼프강 슈파러 국제윤이상협회장은 “윤이상 음악은 아주 독특해서 뉘앙스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르린=유윤종 기자

“윤이상의 음악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시대와 상황의 요구에 따른 면도 큽니다. 유럽에 온 한국인 작곡가로서 그는 당시 서구 아방가르드 문화계와 소통하면서 한국의 고유한 문화적 특질을 작품에 녹여 넣었지요. 오늘날에는 단순한 노력의 결과로 보이지만, 당시 여건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모험에 성공한 거죠.”

슈파러 회장은 “1960년대 서구 모더니즘 음악은 엄격한 체계 속에 갇혀 소리들이 자유를 잃어가고 있었다”며 “윤이상은 도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소리의 자유를 이런 모더니즘 음악세계에 부여해 큰 충격을 주었다”며 그의 음악이 현대음악에 끼친 영향을 설명했다.

국제윤이상협회가 준비하고 있는 연주회는 △11월 3일 ‘윤이상과 제자들’ △4일 ‘윤이상과 그의 선구자들’ △5일 ‘윤이상의 해석’을 주제로 이어진다. 3일 연주회에서는 윤이상의 제자들인 박영희, 헨리 코웰 등의 작품이 선보인다. 4일은 윤이상에게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되는 쇤베르크의 ‘가곡집’ 작품 8, 라벨의 현악 4중주 D 장조 등이 소개된다. 5일은 브루하르트 글레처가 지휘하는 특별 편성의 관현악단이 윤이상의 ‘낙양(洛陽)’ 등을 연주한다.

“윤이상의 음악은 악보 자체를 그대로 연주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동양적인 섬세한 소리의 장식과 뉘앙스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죠. 이런 연주상의 어려움 때문에 연주가들이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면도 있습니다. 윤이상 음악의 연주에 적합한 연주가를 발굴하는 것도 우리 협회가 해야 할 일이죠.”

슈파러 회장은 “윤이상의 음악에 감화된 독지가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이번 행사를 위해 큰 지원을 했지만 재정이 넉넉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아직 시간이 남아있는 만큼 잘 풀려나갈 것으로 낙관한다”고 말했다.

한편 베를린 세계문화의 집이 개최하는 콘서트는 9월 19일 개막되는 ‘베를린 아시아 태평양 주간’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베를린 세계문화의 집 관계자는 “윤이상의 실내악을 중심으로 관현악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소개한다”며 그의 사후 후배 작곡가들이 헌정한 작품들을 별도 조명하는 순서도 마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를린=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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