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만 쌓인 첫 ‘민주의회’…이라크 제헌의회 역사적 개원

  • 입력 2005년 3월 16일 17시 54분


《16일 오전 11시 30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그린 존(안전지대)’. 사담 후세인이 회의장으로 즐겨 이용하던 ‘그린 존’ 안의 한 건물에 이라크 제헌의회 의원 275명이 모였다. 하늘에는 미군 헬리콥터가 굉음을 내고, 지상에서는 겹겹의 철조망 너머로 2개 여단의 미군 병력이 그린 존을 둘러쌌다. 이라크 제헌의회 개원식은 이렇게 시작됐다. 사상 최초의 자유총선을 통해 민의의 대변자들을 선출한 지 45일 만이었다.》

▽첫날 회의=이라크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제헌의회는 최고령인 시아파의 셰이흐 다리 알 파야다 의원을 임시의장에 선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터번을 머리에 두른 의원들이 코란을 인용하여 선서를 하던 바로 그 순간 회의장에서 몇백 m 떨어진 곳에 박격포탄 세례가 쏟아졌다.

6차례 이상의 폭발음과 연기, 뒤이은 사이렌 소리, 헬기의 굉음 속에서도 회의는 계속됐다. 각 정당 대표들이 연이어 연단에 올랐다.

새로 출범할 정부의 대통령이 확실시되는 잘랄 탈라바니 쿠르드애국동맹(PUK) 총재는 “단결되고 독립적인 이라크 연방이 우리의 목적”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유력한 총리 후보인 압둘 아지즈 알 하킴 이슬람혁명최고위원회(SCIRI) 의장은 “후세인 시절의 전범 재판과 재정 처리 등 여러 복잡한 문제를 조속히 처리할 수 있는 정부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제헌의회 의장으로 거론되는 가지 알 야와르 현 이라크 대통령은 “우리에게는 승자도 패자도 있을 수 없으며 함께 이기든가 지는 길만이 남았다”고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화려한 언사가 쏟아진 첫날 회의는 90분 만에 힘없이 끝났다.

‘대통령위원회’를 구성해 대통령과 부통령 2명을 선출하는 등 새 정부 조각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던 언론들의 예상도 빗나갔다. 다음 회의 날짜도 잡지 못했다.

▽산 넘어 산=첫 회의가 이렇게 끝난 것은 각 정당, 정파들 간의 이해관계가 아직까지 조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146석의 의석을 확보해 의회 최대 세력으로 떠오른 시아파의 이라크동맹연합(UIA)과 75석을 확보해 제2정당이 된 쿠르드연맹리스트(KAL)의 갈등. 어느 당도 3분의 2 의석을 차지하지 못해 연정(聯政)을 실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UIA는 KAL에 대통령 자리까지 내주며 흥정하고 있지만 쿠르드족은 이라크의 최대 유전지인 키르쿠크를 당장 넘기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 새 정부의 국방, 내무, 재무장관 등 요직을 둘러싼 갈등도 심각하다.

여기에 40석으로 제3당이 된 시아파의 이야드 알라위 현 총리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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