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한일 수교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러 독도 귀속 문제가 쟁점이 되었을 때 일본의 한 양심적인 지식인이 쓴 논문의 핵심 부분이다.
도쿄(東京)에서 일본어로 발행되던 '코리아 평론'이란 시사 월간지 1965년 2월호에 실린 야마베 겐타로(山¤健太郞·1905~1977)씨의 '독도 문제의 역사적 고찰'이란 논문이다.
그는 이 글에서 "독도 문제는 1905년 일본의 영토 편입이 정당한 것이었는가를 문제시하는데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일제가 1904년 한일의정서를 통해 대한제국 정부 내에 '외교고문'을 신설해 사실상 외교권을 빼앗았단 점을 지적했다.
야마베씨는 "독도 문제는 1904년 이후의 문제로 그 이전 일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그 이전 고문서를 인용한 논란을 일축하고 편입 당시 역사적 배경에 주목할 것을 강조했다.
저명한 노동운동가인 그는 사상범으로 투옥돼 수감생활중 종전을 맞아 석방됐다. 전후 일본공산당 통제위원 등을 지냈으며 한반도 문제에도 관심이 깊어 '일본의 한국병합' '한일합병 소사' 등 저서를 남겼다.
재일 원로학자 김정명(金正明·72)씨는 "역사의식이 대단히 투철했고 정의감이 넘치던 사람이었다"고 평했다. 이 논문만 해도 당시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던 시기라 일본인이, 일본인들을 상대로 '독도는 한국땅'이란 주장을 펼치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야마베씨는 이 글에서 일본 정부가 '시마네(島根)현 영토 편입 고시 때 대한제국이 항의하지 않은 것은 편입 절차가 유효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 '궤변'이라고 일갈했다. 당시 대한제국은 일제 영향 하의 외국인 외교 고문이 있는 상태에서 아무 항의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또 일본 정부가 독도는 에도(江戶)시대 초기 이후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을 '넌센스'라고 비판하면서 독도 문제 핵심은 1905년 2월의 영토 편입이 정당했는가 하는 점에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밖에도 "일본인이 오랫동안 울릉도를 독도와 혼동해 울릉도를 다케시마(竹島)로 불러왔다는 점은 그만큼 일본인들이 독도에 대한 인식이 낮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야마베씨는 "일본이 이 섬을 가질 정당한 이유도, 또 그럴 필요성도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며 '일제가 약취한 지역'의 원상 회복을 강조하며 논문을 맺고 있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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