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中 “만다린을 세계어로”
지난해 중국은 교육부 산하에 중국어의 세계화 전략을 담당할 ‘해외 중국어교육 지원센터’를 출범시켰다. 올해 7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세계중국어대회를 개최한다. 중국어 웅변대회, 지중(知中) 저명인사 초청 강연회 등을 통해 중국어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다.
홍순효(洪淳孝·중문학) 충남대 대학원장은 “이미 중국에서는 중국어를 세계어로 보급하려는 전략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동남아의 중국어 붐이 중국을 크게 고무시켰다고 할 수 있다.
화교가 다수인 싱가포르는 ‘중국 표준어 말하기 캠페인(Speak Mandarin Campaign)’을 벌이고 있다. 나아가 만다린(중국 표준어)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정부 요직 진출을 제한하거나 일부 대학 입시에서 불이익을 주고 있다. 태국에서도 중국어 학원이 인기를 끌고 있다.
○ 몽골 “영어는 제2의 공용어”
정작 중국에서는 영어 열풍이 거세다. 지난달 23일 새벽 중국 베이징의 칭화대 기숙사. 교정의 날씨는 황사(黃砂)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도 산보를 하듯 천천히 걷는 학생 10여 명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President Bush earlier this month surprised the international community.(부시 대통령은 이달 초 국제사회를 깜짝 놀라게 했다)” ‘영어’였다. 이들은 저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주변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영어 문장을 큰 목소리로 반복했다. 영어로 토론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몽골 정부는 지난해 영어를 ‘제2공용어’로 삼는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말레이시아는 학교에서 수학과 과학수업을 영어로 진행하기로 했다. 무한경쟁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국가경쟁력을 높이려면 영어구사 능력을 높이는 것이 필수란 판단 때문이다.
○ 영어 통하는 인도에 외국기업 몰려
국민의 영어구사 능력에 관한 한 아시아에서 인도를 따라갈 나라가 없다. 인도는 국가적 차원에서 영어구사 능력을 경쟁력 향상에 이용하고 있다. 한때 인도에서도 민족주의가 힘을 얻으면서 가능한 한 영어를 배제하고 힌두어를 사용하려는 정책이 시도되기도 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취재팀이 인도의 방갈로르에 있는 한 제약회사를 찾았을 때 이 회사 연구원이 유창한 영어로 회사의 신약(新藥) 개발과정을 설명했다. 미국인보다도 영어를 빨리 말해 “천천히 말해 달라”고 부탁해야 할 정도였다. “영어권 국가에 유학한 경험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런 적은 없지만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영어를 배웠다”고 답했다.
윤효춘(尹孝春) KOTRA 인도 뭄바이 관장은 “인도 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엘리트 교육으로 육성된 인재와 함께 높은 영어구사력”이라며 “세계 각국 기업이 인도에 몰려오는 것도 ‘인재와 영어’ 때문”이라고 말했다.
○ “영어가 뒤지니…” 일본의 고민
영어 공용어론(論)은 일본에서도 심심찮게 나온다. 아사히신문의 국제문제 전문 칼럼니스트인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 씨는 1990년대 말부터 “일본인의 낮은 영어구사력 때문에 일본의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며 일본어와 함께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할 것을 주장해 왔다.
2000년에는 일본 총리의 정책자문그룹이 장기적으로 영어를 제2 공용어로 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또한 대만은 2002년에 발표한 ‘6개년 국가건설계획’을 통해 영어공용화를 본격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한편으로 일본은 아시아에서 일본어의 위상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는 것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본 국제교류기금은 최근 일본어의 국제화를 위해 일본어 교육의 조사와 연구를 전담할 위원회 설치를 일본 정부에 건의했다. 국제교류기금의 오구라 가즈오(小倉和夫) 이사장은 “일본의 언어와 문화를 세계 각국에 확산시키는 노력을 소홀히 하면 국제사회에서 일본 위상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 중국어 영향력은 어디까지?
모국어 사용인구와 경제력, 대외역학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장차 중국어가 영어에 이어 두 번째로 영향력 있는 언어로 떠오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중국 정부는 중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을 현재 3000만 명에서 5년 안에 1억 명까지 늘린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어가 ‘영어의 힘’을 꺾기는 역부족일 듯싶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지난달 “10년 후에 영어를 배우는 인구가 30억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다.
▼‘영어 절대권력’ 보루는 인터넷▼
‘3억8500만 대 871만.’
세계 최대의 인터넷 검색엔진인 ‘구글’(www.google.com)에서 컴퓨터를 뜻하는 영어 ‘computer’와 중국어 ‘電腦(전뇌)’를 각각 검색어로 찾을 때 나오는 웹 문서의 개수다. 한국어 ‘컴퓨터’로 검색된 웹 문서는 272만 개. 온라인에서도 영어의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온라인에서 현저한 언어 열세를 의식한 중국은 올 1월 공산당 기관지 ‘추스(求是)’를 통해 “미국에서 만든 수많은 인터넷 콘텐츠가 중국의 정치, 사회적 가치, 생활 등을 파괴해 전체 사회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온라인 언어전쟁’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최근 온라인에서 영어의 위세가 옛날 같지는 않다. 미국의 인터넷인프라 서비스업체인 베리사인이 지난달 세계 4000만여 개의 인터넷 사이트를 조사한 결과 한때 90%를 넘어섰던 영어 웹 문서 비율이 35%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1999년 1000만 명도 안 됐던 중국의 인터넷 사용인구는 현재 1억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세계 최대 인구와 빠른 경제성장 속도를 감안하면 몇 년 안에 인터넷 사용 인구는 중국이 미국을 앞설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온라인 언어전쟁에서 중국어가 영어를 이길 수 있을까? 상당기간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오택섭(吳澤燮·신문방송학) 고려대 교수는 “중국의 인터넷 사용 인구와 함께 중국어 웹 문서가 급증하더라도, 콘텐츠의 질 때문에 중국어 웹 문서를 찾는 사람보다는 영어 웹 문서를 찾는 사람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며 “온라인에서도 영어의 지배적 위치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미국 회사인 야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가 전 세계 검색엔진 시장의 97%를 장악하고 있는 것도 중국 측엔 장애가 될 것이다.
▽경제부=
권순활 차장
공종식 기자
차지완 기자
▽국제부=
김창혁 차장
이호갑 기자
황유성 베이징특파원
박원재 도쿄특파원
김승련 워싱턴특파원
▽사회부=유재동 기자
▽교육생활부=길진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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