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중국 지식담론 한복판…왕후이, 그가 있다

  • 입력 2005년 4월 12일 18시 45분


최근 번역 출간된 ‘죽은 불 다시 살아나’(삼인)의 저자 왕후이(汪暉·46·사진) 중국 칭화(淸華)대 중문과 교수는 한국에서 중국 지식사회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 역할을 하고 있다.

1995년 그가 쓴 논문 ‘당대 중국의 사상적 상황과 근대성 문제’는 중국보다 2년 앞서 계간지 창비를 통해 국내에 먼저 소개됐다. 또 창비는 2003년 ‘동아시아의 비판적 지성’ 시리즈로 그를 포함한 중국과 일본 학자 6명을 소개했다. 이번에 출간된 ‘죽은 불 다시 살아나’는 그가 2000년 발표한 책으로 6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왕후이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우선 그는 중국 현대사의 산증인이다. 문화혁명 시기 중고교를 다니며 ‘체험 삶의 현장’의 확대판이라 할 하방(下放)생활을 2년간 경험한 뒤 중국 대학이 10여 년 만에 입시를 재개한 1978년 대학생이 됐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건 때는 사회과학원 연구원으로 시위대에 참여했다가 다시 1년간 하방생활을 체험했다.

둘째, 그는 베이징(北京)대와 더불어 중국의 양대 명문인 칭화대의 인문학 분야를 대표하는 교수다. 게다가 중국 지식사회에서 최대 부수를 자랑하는 월간지 ‘두수(讀書)’의 편집주간을 1996년부터 맡고 있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지식담론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셋째, 앞의 두 가지 조건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의 개혁 개방정책을 ‘시장만능주의의 신화’에 사로잡혔다고 비판한다. 또한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긍정적 요소를 되살려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톈안먼 광장에 끝까지 남아 있다가 끌려간 민주인사의 이런 주장은 1980년대 주사파에서 최근 ‘뉴 라이트’로 전향한 한국 486세대의 대척점이라 할 만하다. 중국 지식사회에서는 그를 ‘신좌파(뉴 레프트)’라고 부른다.

그는 문화혁명을 근대성의 부족으로 비판한 1980년대 ‘계몽주의’와, 1990년대 개혁 개방의 성과를 바탕으로 시장의 완성이 곧 근대성의 완성이라고 주장하는 ‘자유주의’를 비판한다. 근대성은 세속화와 합리화를 추구하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끊임없이 부정하는 역설의 존재라는 점을 중국 지식인들이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런 근대성의 역설을 중국의 역사적 전통에서 찾는다. 그는 루쉰(魯迅) 연구에서 출발해 옌푸(嚴復), 장타이옌(章太炎)처럼 중국에 근대성의 개념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그 한계를 비판한 중국의 지적 전통을 현실비판의 자원으로 삼는다.

그는 또한 베버, 하이에크, 리오타르 등 서양사상 연구를 통해 역사상 정치와 경제, 시장과 국가는 분리된 적이 없으며, 시장과 과학의 자율성에 대한 믿음은 신화라고 주장한다. 정치적 자유 못지않게 경제적 평등이 중요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것 자체가 개혁 개방정책의 성과라는 점이 그에 대한 비판으로 작용한다.

그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이욱연 서강대 교수는 “중국의 지식사회를 크게 개혁 개방의 논리를 만들어내는 관방(官房)파, 실용주의적 비판을 펼치는 국정(國情)파, 개혁 개방정책을 비판하는 신좌파, 중국 공산당 자체를 부정하는 망명파로 나눌 때 신좌파는 비주류”라며 “왕후이에 대한 연구는 중국 지식사회에 접근하기 위한 징검다리 정도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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