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국가의 관계는 트럼프로 집을 짓는 것과 같다는 점을 새삼 실감한다. 만들 때는 한 장 한 장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 쌓아야 한다. 하지만 무너질 때는 단 한번의 재채기로도 모든 게 허물어져 버리고 만다.
일본 측에도 할 말은 있다. 일본의 헌법이 무력을 통한 분쟁 해결을 허용하지 않는 만큼 한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이름)’에 대해 일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까 일본의 일개 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들 무슨 위협이 되겠는가.
일본의 대사가 “다케시마는 일본의 고유 영토다”라고 발언한 데 대해 한국 측은 용서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그런 입장을 취하는 상황에서 일본의 대사가 달리 말할 방도도 없는 것 아닌가.
후소샤(扶桑社)판 교과서가 문제라고 하지만 그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거의 없지 않은가. 오히려 교과서 문제가 시끄러워지자 서점에서 그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다.
물론 반론도 있다. 의미가 없는 ‘다케시마의 날’이라면 일본 정부는 왜 막지 않았는가. 일본의 법률에 따르면 중앙정부는 지방자치단체가 하는 일에 간섭할 수 없다. 그래도 일본의 정치인들은 왜 시마네(島根) 현을 설득하려 애쓰지 않았는가.
아무리 일본의 공식 견해라고 해도 대사가 굳이 불에 기름을 끼얹을 필요가 있었는가. 공식 견해를 말하지 않고 넘어가는 방법도 있었다.
교과서에서는 독도에 대해 ‘한일 양측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식으로 쓸 수도 있지 않았나. 굳이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쓰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한일 관계는 21세기의 일본에, 그리고 한국에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려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 못지않게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리며 발언하는 것도 중요하다.
필자는 현재 집권 자민당의 가나가와(神奈川) 현 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연합회 홈페이지에는 유권자들의 질문에 회장이 직접 답하는 코너가 개설돼 있다.
며칠 전 “일본 정부는 왜 다케시마 문제에서 강공책을 내놓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이 접수됐다. 필자는 “그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한일 관계에는 많이 있다”고 답했다.
한일 관계가 좋든 나쁘든 자신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한일 양국의 미래에 관한 비전이 없는 사람, 외교 문제는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다고 믿는 사람…. 지금 독도와 야스쿠니(靖國)신사 문제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 중에는 사실 이런 사람들이 많다. 정치인들이 이런 감정적 논의에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상원의원 시절 쓴 책에는 국익을 위해 과감하게 여론에 맞서는 정치가의 자세에 관해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정치인이 되기 전부터 필자는 이 책을 애독해 왔다.
지금이야말로 한국과 일본의 정치인들은 양국의 장래에 관한 비전을 확실하게 정립하고, 한일 관계를 재구축하기 위해 각자의 나라에서 냉정히 대처할 것을 국민에게 호소해야 한다.
두 나라의 젊은 의원들은 최근 몇 년간 국경과 당파를 뛰어넘어 친교를 다져 왔다. 새로운 젊은 세대가 양국 관계를 위해 나서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고노 다로 일본 중의원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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