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 납치해 결혼… 키르기스 보쌈풍습 여전

  • 입력 2005년 5월 1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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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는 처녀를 납치해 결혼을 한다? 최근 ‘레몬혁명’으로 정권 교체를 이룬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아직도 ‘보쌈’이 남녀를 맺어주는 중요한 풍습으로 내려오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30일 “이 나라의 기혼녀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결혼했다”고 보도했다.

납치혼 또는 약탈혼으로도 불리는 이 관행은 현지어로 ‘알라 카추(붙잡아서 뛰어라)’로 불린다.

이슬람의 종교적 배경으로 인해 연애결혼이 사실상 막혀 있는 데다 800달러 정도의 현금에 소 한 마리를 얹어줘야 하는 ‘신부 대금’ 때문에 많은 총각들이 이런 납치혼을 선호한다는 것.

친척이나 친구의 부추김 아래 술의 힘을 빌린 총각은 미리 점찍어둔 신붓감을 납치해 집에 데리고 온다. 예쁘다 싶으면 길거리에서 아무 여자나 납치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에는 말에 태웠지만 요즘은 자동차가 주로 납치에 쓰인다. 예비신랑의 가족들은 신붓감을 진정시키면서 처녀의 복종을 상징하는 ‘줄루크’라는 하얀 숄을 건넨다. 납치된 처녀는 결혼에 응할지 아니면 ‘손 탄 여자’로서 이 집을 나설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납치된 신붓감은 대개 격렬히 저항하지만 80%가량은 결국 결혼을 받아들이며 친정 식구들도 이를 권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엔 연인들끼리 빨리 결혼하기 위해 서로 짜고 납치극을 벌이기도 한다.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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