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15일자에 ‘부시 행정부의 대사직 가격은 10만 달러’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그 이유는 정치자금 기부자에게 대사직을 주는 미국의 오랜 전통 때문”이라고 해설했다. 미국 정치에선 그리 새로울 것도, 이상한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의 영국대사들만 예로 들어도 윌리엄 패리시 현 대사는 외교적 활동 못지않게 경마장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 마주(馬主)라고 FT는 평했다.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부자 출판업자 월터 애넌버그를, 1938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잉글랜드의 거부 조지프 케네디(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아버지)를 영국대사로 보낸 적이 있다.
소비자권리단체 ‘퍼블릭 시티즌’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8월까지 임명한 대사들 가운데 30명은 10만 달러 이상의 모금자였고, 11월 선거 이후엔 그 수가 더욱 늘어났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은 모금실적에 따라 10만 달러 이상엔 ‘파이어니어(pioneer)’, 20만 달러 이상엔 ‘레인저(ranger)’, 30만 달러 이상엔 ‘슈퍼레인저(superranger)’라는 타이틀을 주는 피라미드식 모금방법을 썼다. 2002년 선거자금법 개정으로 정당에 무제한 기부할 수 있는 ‘소프트 머니’를 규제하면서 부자 친구를 많이 둔 유력 모금인의 역할이 커진 탓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대사직의 30%를 선거자금책에게 나눠준 것은 역대 대통령과 비교할 때 평균 수준. 케네디 전 대통령은 33%를 정치적으로 나눠줬고, 빌 클린턴, 닉슨 전 대통령도 30%를 나눠줬다. 그나마 덜했던 대통령은 24%에 그쳤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부시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과 다른 점은 대사직 외에 행정부 등 다른 요직도 ‘논공행상’용으로 새로 개척한 점이라고 FT는 지적했다. 그는 행정부의 각종 자리에 첫 임기 때는 아버지의 친구와 동료들, 그리고 ‘아버지 행정부’에서 일한 사람들을 기용했고, 두 번째 임기 들어서는 자신의 하버드대 경영대와 텍사스 친구들을 배려하고 있다는 것.
‘퍼블릭 시티즌’에 따르면 지난해 8월까지 ‘파이어니어’와 ‘레인저’ 가운데 5명이 장관직을, 20명이 행정부의 다른 요직을 확보했고, 85명이 각종 위원회 등에 자리를 차지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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