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자민당 인사들이 ‘아시아 외교’ 방향을 놓고 두 편으로 갈라서고 있다.
직접적인 계기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논란에서 비롯됐다. 이 같은 당내 외교노선의 대치 양상은 내년 9월 고이즈미 총리의 당총재 임기 만료를 고려한 ‘포스트 고이즈미’ 싸움의 성격도 띠고 있다.
▽아시아 무시파=국수주의 세력을 배경으로 한 당내 주류파는 한국과 중국 등지에서 제기되는 야스쿠니 참배 비판을 ‘내정간섭’으로 몰며 독자 외교를 주장한다.
여론조사에서 총리 후보감 1순위로 꼽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간사장 대리와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외상, 나카야마 나리아키(中山成彬) 문부과학상 등이 그 대표들이다. 이들은 노골적인 아시아 멸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아베 간사장 대리는 중국의 참배 중단 요구를 ‘중국의 패권주의’로 공격하며 일본인들의 반발 심리를 부추겼다. A급 전범으로 3년 3개월간 수감됐지만 후일 총리에 오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외손자다.
마치무라 외상은 역사왜곡 교과서가 문부성 검정을 처음 통과한 2001년에 문부상이었고 나카야마 문부상 역시 왜곡 교과서 채택을 촉구하는 모임의 핵심 멤버다. 이들은 일제 침략전쟁에 뿌리를 둔 역사 마찰을 민족 간 자존심 대결로 왜곡하고 있다.
이들 인사는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비판받을수록 일본 내 인기가 올라가는 점을 활용해 차기 총리 자리를 노리고 있다.
▽아시아 중시파=총리가 진정 국익을 생각한다면 이웃나라의 반발을 고려해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중지해야 한다는 당내 인사들이 최근 늘고 있다.
자민당 간사장 출신인 고가 마코토(古賀誠) 의원과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의원은 ‘아시아의 신뢰’를 명분으로 삼아 고이즈미 총리의 후계자 자리를 겨냥해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고가 의원은 야스쿠니에 합사된 전몰자들의 단체인 ‘일본 유족회’ 회장임에도 불구하고 신사 참배 중지를 권고해 파문을 일으켰다. 친중파로 불리는 가토 의원은 고이즈미 총리의 외교에 대해 ‘국수주의에 편승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반고이즈미파의 선봉에 섰다가 의원 생활을 접은 반골 정치인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전 간사장도 아시아를 중시하는 외교 정책을 강조했다.
이 밖에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직 총리들과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중의원 의장 등 원로 정치가들도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 중지와 아시아 중시 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도쿄=조헌주 특파원 hanscho@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