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해 미 언론들이 9·11테러 이후 강해진 미국의 애국주의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하는 가운데 워싱턴 정치권은 보수적 유권자의 결집 가능성을 놓고 첨예하게 맞섰다.
▽“이번엔 다르다”=하원은 1989년 그레고리 존슨의 성조기 방화사건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 이후 이를 불법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4차례 통과시켰지만, 번번이 상원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미 언론들은 “이번에는 통과 가능성이 높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9·11테러 이후 미국을 휩쓰는 애국주의 기류와 최근의 보수화 정서가 맞물려 정치인들이 “나는 반대”라는 말을 쉽게 꺼내기 어려운 탓이다.
실제 22일 하원 표결에서 민주당의 경우, 117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77명이나 찬성했다. 공화당은 209 대 12로 찬성이 압도적이었다.
진보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에 따르면 현재 상원의원 100명 가운데 65명은 과거에 찬성표를 던졌거나 찬성하겠다고 공언한 인물이다. AP통신은 “의원 2명이 결심을 늦추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동층인 상원의원 2명 또는 보수적인 남서부 유권자를 의식한 민주당 의원 2명이 생각을 바꾸면 상원 통과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2000년에는 찬성 63, 반대 37로 부결됐다.
물론 상·하원의 동의가 있더라도 개헌을 위해선 50개 주 의회 가운데 4분의 3인 38개 이상의 주 의회가 비준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 그러나 미 언론은 “공화당의 주 의회 장악력을 고려할 때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우향우=워싱턴 정치권은 이 사안이 2006년 중간선거의 핵심의제로 떠오를지를 두고 촉각을 곤두세웠다.
공화당은 이 논쟁이 ‘조국을 사랑하느냐’는 단순화된 질문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손해 볼 게 없다는 표정이다. 애국심이 한껏 고취되는 7월 4일 독립기념일 직후부터 상원 청문회를 개최한다는 전략도 짜 놓고 있다.
톰 들레이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젊은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성조기를 불태우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에 포함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9·11테러 이후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미국의 상징 보호하기’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민주당 선거전략가인 레이 스트로더 씨는 “본질과 무관한 상징기호 싸움에 말려들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어정쩡한 위치는 2008년 대통령선거의 유력한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발언에 잘 녹아 있다. 그는 “드물게 발생하는 훼손사건 때문에 개헌까지 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십자가를 불태우는 것을 불법화한 것과 같은 이유로 처벌법을 만드는 것은 무방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프리덤 포럼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53%는 처벌에 반대를, 45%는 찬성의사를 밝혔다.
워싱턴=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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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존슨 사건은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재선 반대 시위를 벌이던 그레고리 존슨이라는 청년이 구속됐다. 성조기를 불태운 혐의였다. 그는 “눈길 한번 안 주는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미 법조계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처벌 찬성론자는 “표현의 자유는 존중하나 국가 상징물인 성조기를 훼손한 것은 미국 정신에 대한 도전”이라고 주장했다. 반대론자는 “성조기의 상징성을 인정하니 태우는 것이다. 미국의 가치를 실제로 위협하지 않는 상징적 행위일 뿐”이라고 맞섰다.
연방대법원은 1989년 존슨의 손을 들어줬다. 성조기 훼손은 정치적 견해를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1조의 보호대상이라는 설명이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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