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현지 시간) 러시아 관영1TV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당시는 소련이 미국에 앞서 대공미사일망의 개발을 앞둔 시점이었던 데다 사고기가 소련 북해함대의 기지인 세베로모르스크로 향하자 소련 당국은 수호이 전투기 2대를 보내 격추를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사건은 프랑스 파리에서 서울로 가던 KAL 902편 보잉707기가 북극항로를 이탈해 소련 영공을 침범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블라디미르 드미트리예프 소련 제10방공군 사령관과 KAL기를 요격했던 전투기 조종사였던 아나톨리 케레포프 씨 등은 “소련 전투기가 KAL기에 접근해 예광탄을 쏴 항로를 보여줬으며 수차례 유도 착륙을 요구했지만 KAL기가 이를 무시하고 핀란드 쪽으로 도주하려 하자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증언했다.
전투기가 발사한 미사일 1기는 다행히 빗맞아 공중에서 폭발했으나 KAL기는 날개가 손상돼 얼어있는 호수에 비상 착륙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에서는 이 사건은 물론 1983년 9월 사할린 상공에서 KAL 007편 여객기가 격추돼 탑승객 269명이 모두 숨진 사건까지도 KAL기가 미국의 첩보활동을 하다가 일어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이 프로그램에서는 나타났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RAN) 미국·캐나다 연구소의 블라디미르 바실리예프 연구원은 “두 사건은 너무 유사한 경우로 당시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의 민간여객기를 이용해 소련의 대공 방어 능력을 시험하려다가 일어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KAL 902편은 무르만스크 남쪽의 얼음호수에 비상 착륙하는 데 성공했으나 110명의 탑승객 중 2명이 사망하고 1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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