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연방지방법원의 토머스 호건 판사는 뉴욕타임스 주디스 밀러 기자가 이날 끝내 취재원 공개를 거부하자 “내 앞에 법을 무시하는 사람이 서 있다”며 구속 명령을 내렸다. 밀러 기자는 손과 발에 수갑이 채워진 상태에서 워싱턴 외곽 구치소에 수감됐다. 미 언론은 최소한 연방대배심의 조사가 끝나는 10월 이전에 석방되기는 어렵다고 보도했다.
이른바 ‘리크(Leak) 게이트’로 불리는 이 사건은 2003년 초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로버트 노박 씨가 정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중앙정보국(CIA) 정보원의 실명(實名)을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최고 징역 10년형에 해당하는 이 범죄 수사를 위해 임명된 특별검사는 밀러 기자, 시사주간지 타임의 매튜 쿠퍼 기자 등이 비슷한 취재를 통해 취재원의 신원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밀러 기자는 취재만 했을 뿐 기사를 쓴 것은 아니다.
밀러 기자 이외의 기자들은 구속 위기를 모면했다. 정보 누설자로 지목됐던 딕 체니 부통령의 루이스 리비 비서실장이 “나는 ‘익명의 취재원’으로서 보호받을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밝힌 탓이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취재원 보호권리 포기’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버텼다. 보호권리 포기를 수용한다면 앞으로 어느 공직자가 ‘익명’으로 내부 정보를 언론에 제공하겠느냐는 이유에서다. 법원은 그럼에도 “언론사라고 법 위에 존재할 수 없다”며 단호한 결정을 내렸다.
밀러 기자는 이날 법정에서 “감옥행을 피하기 위해 (취재원과의) 약속을 어길 수는 없다”며 “양심에 따른 시민불복종권은 미국 사회 시스템의 기초이며, 역사적으로 존중받아 왔다”고 진술했다.
한편 타임의 쿠퍼 기자는 재판에 앞서 “오늘 아침 취재원에게서 ‘내 신원을 공개해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美신문협회장 등 법원결정 비난▼
취재원 공개를 거부한 주디스 밀러 뉴욕타임스 기자가 구속되자 많은 미국 기자는 “이번 구속 사태는 향후 기자의 자유로운 취재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면서 우려를 표시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덴버포스트, 미니애폴리스 스타트리뷴 등 일부 신문사에서는 기자들이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존 스텀 미국 신문협회(NAA) 회장은 “익명성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어느 취재원이 기자에게 비밀정보를 제공하며, 어느 기자가 마음 놓고 취재원을 접촉하겠느냐”면서 법원의 결정을 비난했다.
토머스 버튼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는 “밀러 기자는 지금 옳은 일을 하고 있다”면서 “그는 언론의 자유를 지킨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부 기자들은 취재원을 공개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거부한 밀러 기자의 결정은 옳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콜 앨런 뉴욕포스트 편집국장은 “다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기자도 법 위에 있지 않다”면서 “위법 행위로 인해 자유를 구속당해야 한다면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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