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보수당 11년 이끈 ‘목수의 아들’ 히스 前총리 별세

  • 입력 2005년 7월 19일 03시 03분


2000년 6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오른쪽)와 함께한 에드워드 히스 전 총리.
2000년 6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오른쪽)와 함께한 에드워드 히스 전 총리.
‘최악의 시기에 총리가 된 것이 인생 최대의 실수였던 총리.’

89세 생일(9일)상을 받은 지 여드레 만인 17일 지병으로 숨진 에드워드 히스 전 영국 총리. 파이낸셜타임스는 그를 가리켜 “반세기(1950∼2001년) 넘게 하원에서 열정적으로 의정 활동을 한 정치인이었다”고 높게 평가하면서 이런 토를 달았다.

그가 총리로 재직한 1970∼74년은 안으로는 노조의 임금 인상 투쟁과 높은 실업률, 밖으로는 석유 파동 때문에 ‘전쟁에 버금가는 위기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는 결국 1974년 총선에서 패배하고 이듬해엔 보수당 당수 자리에서도 축출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때부터 그와 그를 밀어낸 마거릿 대처 전 총리는 견원지간이 됐다.

히스 전 총리에게 정치적 패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73년 영국이 현 유럽연합(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것은 그 스스로 ‘가장 위대한 성공’으로 꼽는다.

목수의 아들인 그는 이른바 ‘귀족당’인 보수당 최초의 평민 출신 당수(1965∼75년)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7세 때 피아노를 배워 연주 실력이 수준급이었던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는데 일간지 가디언은 “음악이 그의 부인이었다”고 보도했다.

그는 요트와 여행도 즐겨 평소 “북한 볼리비아 파라과이 세 나라만 빼놓고 전 세계 모든 나라를 다 가봤다”고 얘기하곤 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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