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고만고만한 人材론 생존못한다”

  • 입력 2005년 7월 19일 03시 03분


학력 저하의 위기감에 빠진 일본에서 경쟁을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들이 한창이다. 변화는 민간 차원에서 먼저 시작돼 제도 개혁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립 중학교 1학년생 자녀를 둔 일본 주부들끼리는 매년 봄이 되면 “혹시 ‘5월 증후군’에 걸리지 않았느냐”는 안부를 주고받곤 한다. 자녀가 치열한 경쟁을 뚫고 4월부터 새 학교에 다니게 된 뒤 갑자기 허탈감에 빠지는 학부모가 많기 때문.

이런 주부들이 고민을 털어놓는 인터넷 사이트도 성황을 이룬다.

▽일본의 입시지옥은 초등학교부터 시작=소학교(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3년이 의무교육인 일본에서는 공립 중학교에 진학할 경우 입학시험을 치를 필요가 없고 학비(교재비, 급식비 등 제외)도 들지 않는다. 하지만 학비가 비싼 사립 중학교에는 해마다 지망자가 몰리는 반면 공립의 인기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사립을 지망하는 어린이들은 늦어도 소학교 4학년부터는 ‘주쿠(塾)’로 불리는 전문학원에서 중학 입학시험을 준비한다. 도쿄(東京)의 소학교 6학년 학급에서는 사립 지망자가 4분의 1가량을 차지해 ‘사립파’와 ‘공립파’가 따로 노는 게 일반화됐다.

소학교 6학년생 A 군은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면 잠시 숨을 돌린 뒤 저녁 도시락을 들고 나가 오후 5시쯤 학원에 도착한다. 2시간 강의를 듣고 7시에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운 뒤 공부를 더 하다 10시가 다 돼서야 집에 도착해 곯아떨어진다.

올해 사립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둔 한 주부는 “소학교 4학년부터 6학년까지 3년간 학원비로만 320만 엔(약 3200만 원)을 썼다”고 말했다.

▽공립에 대한 불신이 사립 인기 촉발=교육 전문가들은 사립 중학교의 입시전쟁을 부추긴 주범(主犯)으로 일본 정부가 전인교육 명분으로 추진한 ‘여유 있는 교육’ 정책을 꼽고 있다.

공립 중학교가 ‘여유 있는 교육’의 취지에 맞춰 2002년부터 주5일제 수업을 실시하고 학생들의 공부 부담도 줄이자 불안해진 중산층 학부모들이 대거 사립으로 향하게 됐다는 것. 사립 중학교는 토요일 수업을 고수하고 있고, 실력 있는 교사를 경쟁적으로 유치해 ‘교육의 질’이 뛰어나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일본의 사립 중학교는 전체 중학교의 6.3%(2003년 기준)로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돈 많은 일부 부유층 자녀가 다니는 학교’라는 인상이 강했다. 그러나 공립을 믿지 못하는 월급쟁이 부모들이 가세하면서 최근엔 경쟁률이 10 대 1에 육박하는 곳도 나오고 있다.

▽교육개혁 나선 일본 정부=일본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평준화 일변도에서 벗어나 학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교육개혁에 나서고 있다. 학교 및 지역별로 학력 서열이 매겨진다는 이유로 폐지한 전국학력시험을 부활한다는 방침을 정했고, 교사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교원면허 갱신제 도입을 밀어붙이고 있다.

나카야마 나리아키(中山成彬) 문부과학상은 올해 초 “일본의 학교교육을 이대로 방치하면 일본은 ‘동양의 노소국(老小國)’으로 전락할 것”이라며 “학생들의 공부 절대량이 부족하지 않도록 주5일제 수업의 실시 여부를 개별 학교의 재량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日 기술자 제조공장 ‘도요타 工大’▼

일본 나고야(名古屋) 시 외곽의 도요타공업대는 ‘일본 기술자 제조공장’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한 학년 정원이 80명인 미니 대학으로 남학생은 입학 첫해 1년간 의무적으로 기숙사에서 공동 자취생활을 해야 한다.

음식 장만에서 화장실 청소까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동으로 해결해야 하는 고충이 따르지만 전국에서 지망자가 몰린다.

도요타자동차가 미래 일본의 제조업을 이끌어 갈 전문 기술인력을 키우기 위해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대학이기 때문이다.

학비는 연간 52만 엔으로 국립대와 비슷한 수준. 하지만 학교 측이 연구비, 실험실습비, 도서비 등으로 지출하는 비용은 학생 1인당 582만 엔으로 10배가 넘는다.

교원 1명당 학생 수는 8.5명으로 사립대 평균(23.1명)보다 훨씬 적고, 실습실은 첨단장비로 채워져 웬만한 대기업 연구센터를 방불케 한다.

취업률은 100%. 도요타 취업자가 가장 많지만 라이벌 업체인 혼다, 닛산, 전자업종 등에도 많은 졸업생이 진출했다. 학교 측은 “도요타뿐 아니라 일본 제조업 전체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인재를 키우는 게 목적”이라고 밝혔다.

도요타가 주부(中部)전력, JR 도카이(東海) 등과 함께 영국의 이튼칼리지를 모델로 해 내년 4월 문을 여는 중고교 통합 학교인 ‘가이요(海陽) 중등교육학교’도 학교 설명회에 수천 명의 학부모가 몰릴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일본 언론들은 “교육에서도 도요타가 하면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작용했기 때문”이라며 대기업의 교육 참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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