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내과의사인 릴랴 하사노바(50·여) 씨는 “옛 소련 시절이 그립다”며 한숨을 쉬었다. 개인병원에서 일하는 그의 월급은 3만 숨(약 4만7000원). 개방 직후만 해도 전문직으로 대접받던 의사를 그만두고 ‘비즈니스’에 뛰어든 옛 동료는 지금 그보다 수백 배는 더 번다.
이처럼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격변기에 개인이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오늘날의 삶은 천지차이가 됐다. 국가별로도 옛 소련에서 독립하면서 어떠한 경제 정책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현재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의 헤이다르 공항. 규모는 크지 않지만 모스크바 공항보다도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외국인들은 미리 비자를 받을 필요도 없다. 공항에 내려 일주일짜리 공항도착 비자를 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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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 수속과 세관 통과에 한참이 걸리는 러시아와는 달리 별다른 어려움 없이 공항을 나오자 경찰이 택시를 잡아 줬다. 30도가 훨씬 넘는 무더운 날씨였지만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에 옛 소련 지역이 아니라 유럽의 어느 도시에 온 듯한 느낌이다.
거리에는 옛 소련제 라다 대신 현대 쏘나타 등 외제차가 넘쳤다. 시내에서는 타워크레인과 고층건물 건설 현장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한눈에도 최근 옛 소련 지역에서 가장 경제가 ‘뜨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의 활기가 느껴졌다.
실크로드의 길목으로 번성했던 아제르바이잔이 제2의 번영기를 맞고 있다. 이번에는 카펫이 아니라 ‘오일달러’ 덕분이다. 카자흐스탄과 함께 카스피해 연안의 석유·가스 개발로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것.
카스피해 연안은 중동 못지않은 에너지 보고(寶庫)로 꼽힌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자료에 의하면 이 지역의 석유 매장량은 2000억 배럴, 확인매장량은 170억 배럴이 넘는다. 이 중 아제르바이잔의 확인매장량은 70억 배럴로 카자흐스탄(90억 배럴) 다음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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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대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석유가 발견된 아제르바이잔은 독립 전까지 옛 소련 전역의 석유 공급을 떠맡다시피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최대격전지였던 스탈린그라드 전투도 ‘바쿠 유전’을 노리는 나치 독일군과 이를 막으려는 소련군이 맞붙은 것이었다.
바쿠에서 만난 한 현지 기업인은 “우리가 소련의 지배만 받지 않았어도 지금쯤 아랍에미리트나 쿠웨이트처럼 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산유국의 진면목은 이제부터다. 지난달 바쿠∼그루지야 수도 트빌리시∼터키의 지중해 연안 항구인 세이한을 연결하는 세계 최장의 BTC 송유관(총연장 1760km)이 완공됨에 따라 석유를 대규모로 서방에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내년 초부터 BTC 송유관이 가동에 들어가면 아제르바이잔은 20년간 500억 달러를 벌어들이게 된다. 현재 아제르바이잔의 석유생산량은 하루 32만 배럴이지만 2007년에는 50만 배럴로, 2009년에는 100만 배럴로 늘어난다.
아제르바이잔은 ‘불의 나라’라는 뜻. 나라 전체가 마치 유전 위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복 받은’ 땅이다. 심지어 2000여 년 전 불을 신성시하는 조로아스터교(배화교·拜火敎)가 번성했던 것도 석유 때문이었다는 얘기가 있다. 20세기 초까지도 우물을 찾아 땅을 파 보면 석유가 쏟아져 나오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바쿠 외곽으로 조금만 나가도 크고 작은 유전들이 즐비했다. 심지어 해수욕장 바로 앞에 해상 유전이 있을 정도다.
오일머니에 힘입어 최근 아제르바이잔의 성장은 눈부시다. 아제르바이잔의 국내총생산(GDP)은 최근 5년 동안 1.8배가 늘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실질 GDP 성장이 무려 21.6%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고속성장의 비결은 무엇보다도 독립 후부터 일찌감치 ‘개방’ 쪽으로 경제 방향을 잡은 것. 터키나 아랍에미리트를 국가발전의 모델로 삼아 ‘서구화된 이슬람 국가’를 지향했다.
아제르바이잔은 옛 소련권에서 처음으로 서방의 거대 에너지사와 생산물분배협정(PSA)을 맺고 적극적인 외자 유치와 에너지 개발에 나섰다.
‘자원민족주의’의 환상이나 외국자본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가 있었다면 카스피해의 막대한 에너지 자원은 아직도 사장돼 있었을 것이다.
물론 성장의 그림자도 있다. 2002년 통계로 국민의 47%가 여전히 빈곤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고 8.8%는 극빈층이다. 빈부 격차를 줄여 오일달러의 혜택이 전 국민에게 골고루 미치도록 하는 것이 이 나라의 시급한 과제로 남아 있다.
타슈켄트·바쿠=김기현 특파원kimkihy@donga.com
▼“한국, 경제파트너이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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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소련이 해체될 때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잠재력이 큰 나라로 꼽혔던 곳은 우즈베키스탄이었다.
2600만 명의 인구 규모에 석유·가스 등 에너지와 금 같은 광물이 풍부한 데다 세계 2위 면화수출국으로서 탄탄한 농업기반까지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의 경제성적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한국수출입은행 등의 자료에 따르면 옛 소련 지역에서 가장 ‘잘나가고 있는’ 아제르바이잔과 카자흐스탄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각각 10.2%와 9.2%였다. 반면 우즈베키스탄은 2.4%로 최하위 수준.
개방보다는 ‘자력갱생’을 추구하는 폐쇄적인 경제 노선을, 시장경제개혁 대신 소비에트식 계획경제를 고집한 탓이다.
1990년대 옛 대우그룹이 자동차공장(우즈대우) 등에 대규모 투자를 해 한때 우즈베키스탄은 ‘대우왕국’으로 불렸다. 그러나 대우가 철수한 후 이렇다할 외국인 투자가 없는 상태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 대외경제청 샤흘로 아둘라예바(사진) 차장은 “각기 고유한 국가발전 모델이 있게 마련”이라며 “우리는 이웃 카자흐스탄이나 아제르바이잔과 달리 안정적인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 경제가 주변국에 비해 침체돼 있다는 지적이 많은데….
“사실과 다르다. 우리 통계로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7.7%, 산업생산은 9.4%나 성장했다. 카자흐스탄이나 아제르바이잔은 에너지 산업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동차 항공기 섬유 석유화학 등 제조업과 농업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카자흐스탄 경제는 1998년 러시아의 채무유예(모라토리엄) 사태 당시 휘청거렸지만 우리는 끄떡없었다. 경제가 외부요인에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환전을 하기 위해 은행 5군데를 돌아다녔다. 경직된 외환 정책으로 외국 기업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외환 자유화를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가끔 일어나는 통화부족 현상은 공공 부문에 임금이 지급된다든지 할 때 일시적으로 생기는 것이지 정부의 규제와는 상관없다.”
―5월 안디잔 유혈 사태로 외국인 투자가 더 위축되지 않았나?
“서방 언론이 왜곡 보도로 사실을 부풀렸다. 일부 서방 국가가 자국민에게 우즈베키스탄 여행 자제 권고를 하는 바람에 여름이면 실크로드 유적을 보기 위해 몰려들던 관광객이 평소의 반으로 줄었다. 그러나 보다시피 정국은 안정돼 있다.”
―5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방문 당시 경제협력 방안이 많이 논의됐다. 양국 간 경협 가능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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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에서 에너지공동개발과 정보기술(IT) 분야 협력이 주로 논의됐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다. 대우가 우리에게 경제 교사 역할을 했다. 한국 기업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겠다.”
타슈켄트=김기현 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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