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뉴욕만큼은 다르다. 뉴욕 중심인 맨해튼 거리는 항상 보행자들로 홍수를 이룬다. 마치 서울을 옮겨다 놓은 듯한 모습이다. 그만큼 도시가 활기에 넘친다.
이처럼 걸어 다니는 뉴요커들이 많은 이유는 맨해튼에 자동차를 끌고 오면 통행료와 시내주차비가 엄청나게 비싸기 때문이다. 웬만큼 부자가 아니면 차를 가지고 맨해튼에 들어올 수 없다. 이 때문에 뉴요커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걷고, 또 짧은 거리는 그냥 걸어서 다니다보니 평균적으로 걷는 거리가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
도시별로 비만도를 조사해 보면 뉴요커는 미국의 다른 대도시 사람들에 비해 훨씬 날씬할 뿐만 아니라 더 건강하다. 걷기가 안겨 준 뜻하지 않은 선물인 셈이다.
특히 맨해튼을 돌아다니다 보면 배낭을 어깨에 메고 걷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뉴요커뿐만 아니라 관광객들도 맨해튼에서는 배낭을 메고 움직인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맨해튼에서 움직이는 방식이다. 별로 힘들지도 않다.
그런데 최근 뉴욕의 ‘배낭족’들에게 귀찮은 일이 생겼다. 영국 런던에서 잇따라 테러가 발생하자 뉴욕 시 당국이 만일의 테러를 막기 위해 22일부터 지하철 등 대중교통 수단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불심검문을 실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이날 맨해튼 일대는 시위 주동자를 잡기 위해 검문검색이 일상적으로 이뤄졌던 1980년대 한국 대학가 주변을 방불케 했다. 수천 명의 경찰들이 지하철역에 배치돼 대대적인 불심검문을 벌였다.
특히 폭발물질을 넣기 쉬운 배낭은 검문검색의 타깃이 됐다. 지하철역 등에서 불심검문에 걸린 배낭족들은 배낭을 풀어 보여야 했고 신분까지 밝혀야 했다. 마치 공항검색대를 지하철로 옮겨 놓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배낭 등 큰 짐 소지자는 4명에 1명꼴로 검색을 했다는 것이 뉴욕경찰 당국의 설명이다.
뉴욕 시 당국은 “검문 대상자들이 검문을 거부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 지하철 등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실상 배낭을 멘 사람으로선 검문검색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셈이다.
뉴욕 시민들은 대체로 이 같은 조치를 이해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TV 인터뷰에 응한 시민들은 “불편하기는 하지만 뉴욕 전체의 안전을 위해서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미 리소고르스키(24) 씨는 이날 “오늘 아침에 한 차례, 저녁에 또 한 차례 모두 두 번이나 불심검문을 받았다. 짜증이 난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배낭이 ‘의심 물건 1순위’로 분류되다 보니 아예 배낭을 메고 다니지 않는 사람도 많이 나오고 있다. 파키스탄계 미국인으로 현재 투자은행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샤킬 쿼레시(21) 씨는 “평소 매일 아침 운동을 하기 때문에 배낭을 메고 다녔는데 검문이 있다고 해서 오늘은 신문만 들고 집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미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가능하면 사생활 침해를 하지 않으려는 곳이다.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개인 신상정보를 자세하게 묻지 않는다. 그런데 1980년대 권위주의 정부 시절 한국에서와 같은 불심검문이 2005년 미국에서 이뤄지는 광경 앞에서 9·11테러 이후 ‘미국의 일상’이 얼마나 많이 변했고, 또 변하고 있는지를 절감할 수 있었다.
공종식 뉴욕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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