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폴 크루그먼]‘할 수 없다’ 핑계만 대는 美정부

  • 입력 2005년 9월 7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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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11테러가 터지기 전,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미국에 닥칠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재앙 세 가지를 열거했다. 뉴욕의 테러 공격, 샌프란시스코의 대지진, 뉴올리언스의 허리케인 습격이 그것이다. 휴스턴 크로니클지는 2001년 ‘그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시나리오는 뉴올리언스의 허리케인’이라고 보도했다. 그 기사와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왜 뉴올리언스와 미국은 이번 재앙을 준비 없이 맞았던 걸까. 9·11테러가 일어났을 때도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됐지만 ‘국가적 단결’이라는 미명과 갖가지 변명 속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이번만큼은 누군가가 해명해야 한다.

질문 1. 왜 구호와 치안의 손길이 늦게 도착했는가? 카트리나가 멕시코 만 해역에 막대한 손실을 줄 것임은 상륙 사흘 전 이미 정해진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도 선진국에 걸맞은 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수천 명이 죽은 것은 대피를 ‘거부’해서가 아니다. 가난하거나 병들어 이동하려면 도움이 필요했는데도 도움의 손길이 오지 않은 것이다.

주 정부와 지역 정부의 대처 방식에 대해서도 많은 의문이 제기돼야 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할 때, 사태의 초점은 연방 정부가 사전준비 없이 뒤늦게 재난에 대처했다는 데 맞춰진다.

심지어 투입할 만한 곳에 있었던 군대조차 투입 명령을 받지 않았다. 미시시피 주 빌럭시의 선헤럴드지는 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수요일, 기자들은 빌럭시 중학교의 대피소에서 생사를 가르는 참혹한 허리케인 체험담을 취재했다. 이곳에서 북쪽을 쳐다보니 길 건너 공군기지 군인들이 농구와 체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주방위군 대다수와 수상 운송장비 등 각종 장비가 대부분 이라크에 가 있다.

질문 2. 왜 제대로 된 재난 예방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나? 육군 공병대가 진행해 온 제방 건설과 보수 등 홍수 예방 작업은 2003년 이후 갑자기 진도가 늦춰졌다. 뉴올리언스의 지역신문인 타임스피커윤은 연방 예산 삭감과 이라크 전비 때문에 공병대 예산이 압박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2002년에도 공병대 대장이 행정부의 홍수 방지 예산을 포함한 예산 삭감 계획을 비판했다가 해임됐다.

질문 3.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연방재난관리청의 효율성을 훼손한 것 아닌가? 행정부가 재난관리청을 ‘원하지 않은 양자’로 취급해 온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결과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이 무더기로 빠져나갔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재난관리청장으로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던 제임스 리 위트 씨는 지난해 의회 청문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을 잘했던 왕년의 재난관리청이 사라졌다는 말을 매일같이 듣고 있다.”

나는 이것이 단순한 기능 쇠퇴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 미국의 지도자들이 행정부의 핵심적인 기능 몇 가지를 소홀하게 취급하고 있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전쟁 수행은 좋아하지만 안전 확보나 사람을 구하는 일, 위험 예방에 돈 쓰는 일은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한때 ‘할 수 있다(Can do it)’ 정신으로 유명했던 미국은 이제 ‘할 수 없다(Can’t do it)’ 정신의 정부를 갖게 됐다. 그 정부는 일을 하는 대신 핑계만 찾고 있다. 그들이 핑계를 만들어 내는 동안 미국인들은 죽어 가고 있다.

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프린스턴대 교수

정리=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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