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오그번 주한 美대사관 신임 공보관

  • 입력 2005년 9월 30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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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환영 리셉션에 참석한 로버트 오그번 신임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관. 한국계 공보관은 그가 처음이다. 이훈구 기자
26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환영 리셉션에 참석한 로버트 오그번 신임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관. 한국계 공보관은 그가 처음이다. 이훈구 기자
“오늘은 그가 ‘노코멘트’라고 외치지 않는 유일한 날이 될 겁니다.”

던 큐 워싱턴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참사관은 26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환영 리셉션에서 로버트 오그번(46) 주한 미대사관 신임 공보관을 소개하며 이런 농담을 던졌다.

미대사관의 공식적인 ‘입’에 해당하는 공보관은 다루는 현안만큼이나 복잡 미묘한 자리. 쉽게 정보의 문이 열리지 않아 한국 기자들에게서 종종 불만이 터져 나오곤 한다. 그런 직책을 맡게 된 오그번 공보관은 이날 단상에 올라 ‘노코멘트’ 없이 5분 정도 유창하게 부임 소감을 밝혔다. 그것도 한국말로.

한국인 외모에 한국말까지 ‘되는’ 미대사관 대변인. 무대를 내려온 그에게 한국어 실력을 칭찬해 줬더니 그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3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맹연습한 덕입니다. 비서가 번역해 준 한국말을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 아직 한국말로 대화할 만한 실력은 못 됩니다.”

베트남 출신인 오그번 공보관의 부인 투항 씨. 그에게 한국은 각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남편뿐만 아니라 첫째 아들도 이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훈구 기자

이날 리셉션에 참석한 150여 명의 한국인은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단지 그의 생김새 때문이 아니라 46년 전 서울에서 태어나 곧바로 미국 가정에 입양된 그가 미국의 주요 외교관으로 성장해 다시 이 땅을 밟은 것에 아낌없는 격려를 보낸 것이다. 행사가 끝날 때까지 그와 얘기를 나누려는 참석자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섰다.

리셉션에 모인 기자들의 질문은 미대사관 공보시스템 변화에 집중됐다. 한국계인 그가 한국에 좀 더 밀착된 공보활동을 펼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는 증거. 그는 이 같은 기대를 의식한 듯 “미대사관의 ‘벽’이 높다는 인식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한국 언론과 좀 더 자주 만나겠다”고 밝혔다.

직업 외교관인 오그번 공보관은 이번이 두 번째 한국 근무. 외교관이 된 뒤 첫 부임지로 1988년 한국에 와서 5년 동안 미대사관 부(副)문정관과 대구 미문화원장을 지냈다.

그는 “이전보다 중책을 맡았지만 마음은 더 여유롭다”고 말했다. 첫 한국 근무 당시 복잡한 한미 현안이 더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친부모를 찾아야 한다는 개인적인 과제도 있었다.

오그번 공보관의 한국 이름은 우창제. 당시 그는 단양 우(禹)씨 종친회까지 참석해가며 친부모를 찾아 헤맸다. 1993년 한국을 떠나기 직전 그의 뿌리 찾기 노력이 언론을 타면서 여러 명의 제보자가 나타나기도 했다.

결국 친부모를 만났을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찾지 못했습니다. 이미 돌아가셨을지도 모르지요.”

그는 더는 부모 찾기에 큰 미련을 두지 않은 듯 보였다.

이날 행사에는 그의 베트남 출신 부인 투항 씨도 참석했다. 남편과 조지타운 대학원 동창이기도 한 그는 결혼 직후 남편과 함께 처음 한국 땅을 밟았었다. 남편의 부모 찾기 노력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함께 울고 웃었던 그는 “우리 부부는 이집트의 카이로, 베트남 등 다른 부임지를 거치면서도 ‘마음의 고향’인 한국을 결코 잊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그번 공보관은 여러 권의 책을 낸 저술가이기도 하다. 이미 중학교 2학년 때 첫 습작 소설을 냈던 그는 한국 근무 시절 ‘어머니 나라에서 만난 시간들―로버트 오그번 에세이 또는 우창제 이야기’라는 에세이집을 비롯해 2권의 책을 낸 바 있다. 그에게 글쓰기는 외교관 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수단인 동시에 입양아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번 한국 근무 기간 중 그가 또 어떤 작품을 만들어낼지 기대된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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