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쌍중 1쌍은 국제결혼… 문화의 벽 허물기

  • 입력 2005년 10월 10일 03시 00분


레모 베르두 서울리츠칼튼호텔 총주방장과 한상숙 씨 부부.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려는 국제결혼 부부의 노력을 식탁에서 재현해 봤다. 베르두 씨가 포크와 나이프로 김치를, 한 씨가 수저로 빵을 먹으려 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레모 베르두 서울리츠칼튼호텔 총주방장과 한상숙 씨 부부.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려는 국제결혼 부부의 노력을 식탁에서 재현해 봤다. 베르두 씨가 포크와 나이프로 김치를, 한 씨가 수저로 빵을 먹으려 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저녁을 먹고 있는데 글쎄 사위가 옆에 누워있더라고요.”

프랑스인을 둘째 사위로 둔 하현숙(55·서울 중랑구 상봉동) 씨는 3년 전 일을 떠올렸다.

“불쾌하다기보다는 당혹스러웠죠.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말도 못하고 있었는데 딸이 얼른 눈치 채고 사위를 데리고 나가더군요.”

외국인과의 결혼이 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결혼한 부부 12쌍 중 1쌍이 국제결혼일 정도다.

주변에서 외국인 사위나 며느리를 봤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여기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딸이나 아들이 외국인을 데려와 결혼하겠다고 한다면….

왜 하필 외국인이냐는 막연한 거부감은 공통적이겠지만 딸의 경우 외국에 가서 살면 자주 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가장 크다.

하 씨의 결혼 반대 이유도 딸이 프랑스에 살면 얼굴 보기 힘들어질 것 같은 생각에서였다.

“친척 중 한 분은 외동딸이 미국인과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몇 차례나 기절해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어요.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승낙하더라고요. 저도 프랑스에 가서 사돈 될 사람들을 만나고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국제결혼에서 제일 먼저 부딪히는 것은 의사소통 문제다.

대구에 사는 김선화(53) 씨는 사투리 때문에 아들(29)에게 핀잔을 들어야 했다.

아들의 홍콩에 사는 여자친구 코엔(29) 씨가 사투리를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짓자 아들이 ‘어머니, 코엔 앞에서는 사투리 쓰지 마세요’라고 말한 것.

“며느리 될 사람이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기특하기는 하지요. 하지만 평생 써 온 사투리를 어떻게 고치나요. 물론 불편한 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남편이 한문으로 이런저런 대화를 건네자 ‘미래의 시아버지’가 한문을 많이 안다며 서툰 우리말로 ‘똑똑해요’라고 말해 웃음바다가 됐지요.”

화적 차이에 따른 갈등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미국인 남편을 둔 이은주(47·서울 용산구 이촌동) 씨는 성묘 문제로 남편과 큰언니가 의견 충돌을 일으키는 바람에 곤란한 적이 있다. 지금도 남편은 한국의 성묘 문화에 대해 완전히 받아들이는 것 같지는 않단다.

남편은 명절에 교통지옥을 겪으면서 왜 성묘를 가야 하느냐, 성묘를 간다고 해서 죽은 장모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생각한다는 것.

하지만 이 씨의 여동생 은경(42·서울 서초구 반포동) 씨의 생각은 큰언니와는 다르다.

“형부는 조카들에게 요리도 해 주고 설거지를 직접해요. 한마디로 다정다감해요. 물론 가족이 모처럼 모인 날에도 아이들에게 취침시간을 지킬 것을 요구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생활을 중시하는 외국의 문화와 달리 정(情)으로 설명되는 한국인의 생활습관이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미국인과 7년 사귀다 결혼한 정모(30·서울 노원구 중계동) 씨는 결혼 후 6개월 동안 친정에서 지내면서 남편과 친정식구 사이에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친정식구들은 스스럼없이 대한다고 하지만 노크도 않고 방문을 열거나 원하지 않는데 음식을 챙겨주니까 남편이 귀찮아하더라고요.”

음식 또한 쉽게 넘기 힘든 벽이다.

이은경 씨는 “언니 집에 가서 아이들과 매운탕을 끓여 맛있게 먹는데 형부 혼자서 통조림 등으로 식사할 때 미안한 생각이 든다”며 “밖에서는 한국음식을 잘 먹는데 집에서는 아닌 것 같아 식사할 때는 조심스럽다”고 덧붙였다.

혼을 반대했던 가족들도 외국인 가족이 우리말과 풍습을 배우고 적응하려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생각이 차차 바뀌어간다.

일본인을 며느리로 맞은 김모(54) 씨는 큰 반대는 안했지만 며느리와 모녀처럼 지내고 싶었는데 말도 안 통하고 이것저것 다른 점이 많아 조심스러웠다고 털어놨다.

“10년쯤 지나니 그런 마음도 없어지고 며느리가 한국에서 적응하느라 얼마나 마음 고생했을까 생각이 들어 더 잘해 주게 돼요. 출신지를 막론하고 사람 마음은 똑같은 것 아닌가요.”

한국가족문화원 박민자(덕성여대 교수) 원장은 “자녀들만 좋다면 허락하겠다는 부모도 막상 외국인을 배우자 상대로 데려왔을 때 승낙하기는 쉽지 않다”며 “결혼 당사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인끼리 결혼해도 집안끼리 문화적 차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가족들도 상대가 모르고 행동할 때 웃어넘기고, 웃어넘기기 어려운 것은 자녀를 통해 의사를 분명히 전달해 쓸데없는 감정 소모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강선임 사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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