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옥 사건 이후) 법무상이 바뀌어 취임 기자회견을 할 때마다 기자들은 첫 번째 질문으로 ‘재임 중 수사지휘권을 발동할 것이냐’고 물었고, 역대 법무상은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지 않겠다’고 공개석상에서 다짐했다.”
가와카미 변호사는 “한국 검찰의 수사지휘권 사태를 전해 듣고 조선의옥 사건이 떠올라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는 말부터 꺼내며 이같이 말했다.
“그때 일본에선 법무상의 부당한 지휘를 받고도 검사총장이 물러나지 않았는데…. 한국의 검찰총장이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 것은 한 수 위로 보인다. 검찰권의 독립 차원에서도 훌륭한 결단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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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시 일본의 검사총장은 집권당 실력자가 뇌물을 받은 것이 분명한데도 법무상이 수사 중단 명령을 내리자 이를 받아들였다”며 “총장이 자리 보전에 급급해 권력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면 일선 검사들의 사기가 떨어져 수사할 의욕을 잃게 된다”고 잘라 말했다.
조선의옥 사건 당시 도쿄지검 특수부가 집권 여당인 자유당의 핵심 지도부를 파고들자 이누카이 다케루(犬養健) 법무상이 지휘권을 발동해 수사를 중단시켰다.
“이후 검찰의 위신이 크게 떨어지고, 검찰 조직도 홍역을 치렀지만 오히려 검찰의 독립을 지키는 데는 좋은 작용을 했다. 어느 법무상도 그 후 수사지휘권 발동이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여론의 감시가 정치권력의 부당한 횡포로부터 검찰을 지켜준 셈이다.”
가와카미 변호사는 그런 점에서 권력과 검찰이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김종빈(金鍾彬) 전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을 수용하고 사퇴한 데 대해 “검찰의 활동 근거는 법률에 있는 만큼 법에 근거한 장관의 지휘를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며 “검찰총장의 진퇴 모델을 보임으로써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선택했다”고 평가했다.
“판사나 검사는 법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존재다. 법률이 엄연히 살아 있는데 실정법 위반을 보고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면 검찰은 존재 의의를 상실한다. 정치권이 법을 없애거나 바꾸면 모르지만, 법(국가보안법)을 그대로 둔 채 수사지휘권을 통해 검찰을 압박하는 것은 바른 길이 아니다.”
51년 전 일본 검찰을 상대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던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내각은 비판 여론이 들끓어 결국 붕괴됐다.
이를 염두에 둔 듯 가와카미 변호사는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국민의 눈이 가장 엄격하고 정확하다”라며 “한국에서 검찰총장만 물러난 것은 좀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또 이번 일로 일선 검사들의 사기가 떨어지면 사회악 척결이라는 검찰 본연의 기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의 검찰 조직에도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한국 검찰이 김영삼, 김대중 정권에서 현직 대통령의 아들을 연이어 구속했다는 뉴스를 듣고 정말 큰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형 비리 수사로 개가를 올리는 과정에서 검찰의 힘이 지나치게 세진 측면은 없었을까.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검찰에서 일할 때는 한국 검사들이 나이가 젊은데도 고급 아파트에 살고, 고급 술집에 드나드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검사 스스로 권력의 맛에 취해 자기 정화를 소홀히 하니까 국민의 눈에 권력집단으로 비치고, 그런 것이 쌓여 정권에 검찰 개혁의 명분을 준 것은 아닌가.”
다나카 전 총리가 1983년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을 때 가와카미 변호사는 도쿄지검 특수부장이 되어 ‘거악(巨惡)의 말로’를 지켜봤다.
그는 “다나카 전 총리의 유죄는 확신했지만 재판이 7년 이상 끄는 것을 보면서 정치적 뒷거래를 통해 특사로 풀려날 가능성은 있다고 봤다”며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검사를 그만둘 각오였다”고 회고했다.
록히드 사건 수사가 정치권의 숱한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의옥 사건의 교훈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회고했다. 22년 전의 치욕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검찰 수뇌부의 결단과 정의로운 젊은 검사들의 집념이 없었다면 수사는 난관에 봉착했을 수도 있었다는 것.
가와카미 변호사는 “51년 전으로 돌아가 조선의옥 사태의 전말을 되짚어 보면 정치권력과 검찰의 관계 설정을 놓고 진통을 겪고 있는 지금의 한국 사회 역시 좋은 시사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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