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고도성장 이끈 보수 정당=전후 자유당과 민주당으로 나뉜 일본의 보수 정당은 1955년 ‘보수 세력의 대단결’이라는 기치 아래 합당해 자유민주당을 출범시켰다. 정치권의 사회주의 세력이 합치자 분열 상태가 계속되면 정권을 빼앗길 것이라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 이에 따라 보수계와 혁신계로 양립된 ‘55년 체제’가 완성됐다.
자민당은 재계와 긴밀한 공생 관계를 유지하며 ‘정경 유착과 관료 주도에 의한 고도경제 성장’이라는 일본식 모델을 완성시켰다. 평화헌법과 미일동맹의 틀 속에서 군사력을 미국에 의존한 것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을 일구는 데 큰 힘이 됐다.
그러나 금권 및 파벌정치의 폐해가 심각해지면서 1976년 록히드 사건, 1988년 리크루트 스캔들 등 정치권의 뇌물수수 비리가 잇따라 불거져 유권자의 외면을 자초했다. 자민당은 1993년 총선거에서 패배해 야당으로 전락했지만 1년 후 정권을 되찾고 연립 등을 통해 집권당의 지위를 유지해 왔다.
▽개혁 내걸고 ‘고이즈미당’으로 변신=자민당의 창당 50주년이 주목을 끄는 이유는 기념식장에서 자위대의 군대화와 집단적 자위권의 허용을 골자로 한 자체 헌법개정안이 발표되기 때문. 창당기념일은 15일이지만 노리노미야(紀宮) 공주의 결혼식과 겹쳐 기념식은 22일 열린다.
9·11 총선거에서 자민당은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합쳐 전체 의석(480석)의 3분의 2인 개헌 발의선을 넘기는 대승을 거둠에 따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개헌을 추진할 여건을 갖췄다.
이에 당내 매파는 기념식을 헌법 개정의 결의를 다지는 자리로 삼겠다고 단단히 별렀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50번째 생일이니 재미있고 유쾌한 분위기로 치르라”고 지시하는 바람에 김이 빠진 표정이다.
정계 소식통은 “엉뚱하게 보이는 지시지만 심각한 것을 바라지 않는 지지층의 취향을 간파한 ‘고이즈미식 결정’”이라고 전했다. 당내의 어느 실력자도 이런 즉흥적 지시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 고이즈미당으로 바뀐 것을 실감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이즈미 총리는 내년 9월까지인 자신의 임기 중에는 개헌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차기 총재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개헌이 공론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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