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12시 정각. 성조기와 일장기로 둘러싼 연단에 두 정상이 섰다. 고이즈미 총리가 먼저 기조발언에서 “미일 관계가 좋으면 좋을수록 일본은 한국 중국 동남아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미일 동맹의 굳건함을 과시했다.
잔뜩 굳은 나머지 비장하게 보이는 표정을 지었고, 작지만 절도 있는 목소리였다.
그는 12월 국회의 이라크 파병 동의안 연장을 앞둔 시점에서 “자위대의 철수는 현재로선 없다”며 이라크 문제로 골치를 앓는 미국에 선물을 안겨 줬다.
부시 대통령은 특유의 활짝 웃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우리가 좋은 친구라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며 “두 나라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일을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지지 발언도 이어졌다.
한국과의 외교와 한반도의 장래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미일 간의 ‘찰떡 동맹’은 두 정상이 이렇게 우의를 다지는 가운데 강도를 높여 가는 듯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일본 총선 승리는 기적”이라고 말하자, 부시 대통령은 “일본 국민의 참목소리를 읽어낸 당신의 리더십의 산물”이라고 치켜세웠다.
부시 대통령은 회담에서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다. 마이클 그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선임보좌관은 “그 대신 동아시아 역사 문제를 논의했지만 회담은 미래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이 이날 오후에 한 별도의 연설은 ‘동아시아 민주화를 위한 선언문’을 연상시켰다. 자유(freedom), 자유로운(free), 더 자유로운(freer) 등 자유라는 단어가 무려 78차례 등장했다. 19일 방문하는 중국을 겨냥하는 듯한 말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한국을 “독재시대를 벗어나 민주화된 경제 강국으로 거듭난 가장 극적인 사례 중 하나”라고 높게 평가했다. 그는 “우리는 북한 주민을 잊을 수 없다”며 “21세기는 모든 한국인에게 자유의 100년이 될 것이며, 한반도의 누구라도 존엄성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련 워싱턴특파원 동행취재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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