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亞의 북한’ 투르크메니스탄을 가다<上>

  • 입력 2005년 11월 21일 03시 03분


대통령궁(왼쪽의 황금지붕 건물)을 중심으로 한 아슈하바트 중심가. 대리석의 웅장한 건축물과 사방으로 뻗은 도로가 인상적이다. 아슈하바트=김기현 특파원
대통령궁(왼쪽의 황금지붕 건물)을 중심으로 한 아슈하바트 중심가. 대리석의 웅장한 건축물과 사방으로 뻗은 도로가 인상적이다. 아슈하바트=김기현 특파원
《1991년 구소련에서 독립한 후에도 외부 세계와 단절된 ‘은둔의 나라’였던 투르크메니스탄이 장막을 걷고 서서히 국제사회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65) 대통령에 대한 개인숭배와 국민들에 대한 철저한 통제로 ‘중앙아시아의 북한’으로 불리는 나라. 그러나 전 세계 가스 매장량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풍부한 천연자원과 경제적 잠재력에 주목한 서방국가들의 끈질긴 구애 속에 굳게 닫혔던 문이 최근 조금씩 열리고 있다. 현장에서 본 투르크메니스탄의 변화상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19일 수도 아슈하바트 한복판에 있는 대통령궁 옆의 광장. 3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63m의 첨탑 위에 세워진 12m 높이의 황금 동상이 사막의 강렬한 햇살을 받고 눈부시게 번쩍거렸다.

투르크멘바시(투르크메니스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니야조프(65) 종신대통령이 하늘을 향해 팔을 치켜들고 시내를 굽어보고 있었다. 이 동상은 태양을 따라 서서히 움직이고 있어 마치 니야조프 대통령을 향해 태양이 도는 것처럼 보였다.

니야조프 대통령의 황금 동상은 시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관공서 등 주요 건물에는 빠짐없이 그의 초상화가 붙어 있어 북한의 김일성(金日成) 주석을 연상시키는 개인 숭배의 실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니야조프 대통령의 한마디는 절대적이다. 아슈하바트 국제공항은 외국의 공항처럼 ‘금연’ 구역이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면 안 되는 이유는 조금 색다르다. 전 국민이 매일 읽고 외워야 하는 경전 같은 니야조프 대통령의 어록집 루흐나마에 “담배는 몸에 해롭기 때문에 끊는 것이 좋다”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루흐나마에는 담배를 끊는 방법부터 지진이 일어날 때 대처하는 방법까지 모든 국민이 지켜야 할 생활 규범이 자세히 나와 있다. ‘위대한 수령’의 교시와 비슷한 것이다.

짐을 풀고 호텔방에서 켠 TV는 온통 니야조프 대통령을 찬양하는 프로그램 일색이었다. 하지만 BBC와 NHK 등 외국 방송도 볼 수 있었다.

니야조프 대통령은 총리도 겸하고 있는 데다 야당도 없어 절대 권력을 누리고 있다. 기자를 맞은 정부 관리들은 ‘김일성 배지’처럼 니야조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배지를 달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는 약간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우리는 북한과는 별다른 교류가 없다”고 대답했다.

외무부의 바티르 히디로프 공보관은 “우리 국민은 만족하고 산다”고 말했다. 무상교육에 무상의료 체제가 유지되고 있으며 전기 수도 가스 등 공공요금 또한 무료라는 것. 1달러면 휘발유 60L를 살 수 있을 정도로 물가도 싸다고 한다.

높이 12m 대통령 황금동상
아슈하바트 시내를 내려다보는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대통령의 황금 동상. 동상 높이만 12m며 태양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마치 대통령이 태양을 안고 도는 것처럼 보인다. 아슈하바트=김기현 특파원
그는 니야조프 대통령에 대한 외신의 근거 없는 ‘왜곡 보도’ 때문에 투르크메니스탄의 이미지가 훼손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대통령의 지시로 도서관이 모두 폐쇄됐다거나 외국인이 투르크메니스탄 여성과 결혼하려면 정부에 5만 달러의 기부금을 내야 한다는 보도는 모두 사실과 다르다는 것.

관리들의 이런 일방적인 체제 홍보성 주장을 모두 믿기는 어려웠지만 중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이 옛 소련에서 독립한 후 내전과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반면 투르크메니스탄은 외형적으로 가장 평온하고 안정돼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슈하바트 시내의 모습도 입국하기 전 상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대리석으로 지은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과 깨끗하고 잘 정돈된 거리, 곳곳의 공원과 분수가 인상적이었다. 최근 가스 개발과 고유가로 쏟아져 들어오는 ‘오일 머니’ 덕분에 국가 재정도 든든해진 것 같았다.

낮에는 관광청 소속 안내인이 따라다녔지만 저녁 시간에는 택시를 잡고 시내를 다녀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밤거리에는 차와 인적이 별로 없어 한산했다. 외국인이 아슈하바트 밤거리를 안심하고 걸어도 될 정도로 치안이 좋았다.

집집마다 방송 수신용 접시 안테나가 달려 있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기자를 태운 택시운전사는 “재미없는 국영방송보다 터키 방송을 주로 본다”고 털어놓았다.

밤이 되면 외국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나이트클럽과 레스토랑 호텔 카지노 등은 아슈하바트의 별세계였다. 레스토랑에서 친구와 생일 파티를 하던 여대생 마흐리 사파로바(22) 씨는 “밤 11시 이후에는 외출을 자제하라는 규정이 요즘에는 약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폐쇄 사회 투르크메니스탄에도 변화의 빛이 스며들어 오고 있었다.

아슈하바트=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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