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과 지식인들은 ‘사법부의 양식을 보여 준 판결’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1주일 뒤 판결에 불복하고 최고재판소(대법원에 해당)에 상고했다.
한국과 대만의 한센병 피해자들이 제기한 피해 배상 소송의 1심에서 한국 측 원고는 예상치 않은 패소 판결에 망연자실했다. ‘인권에 관심이 있는 재판부’를 만난 대만 원고단은 승소하자마자 후생성 청사를 찾아가 “이번엔 제발 항소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물론 일본 정부는 항소했다.
3년간 도쿄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지켜본 일본의 전후 배상 소송은 늘 이런 식이었다. 1심 또는 2심에서 원고가 승소하면 일본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항소한다. 재판이 최종심까지 지루하게 이어지는 동안 고령의 원고들은 가슴에 쌓아 둔 한(恨)을 풀지 못한 채 쓸쓸히 눈을 감는다.
북한의 인권 문제를 전담할 인권대사를 신설할 계획이라는 일본 정부의 발표는 그래서 입맛이 쓰다. 일본이 과연 남의 나라 인권을 탓할 정도로 인권 선진국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인접국 북한의 인권 상황은 일본에서도 관심사다. 북한 주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은 TV를 통해 심심치 않게 방영된다. 집권 자민당은 ‘북한인권법’ 제정도 추진 중이다.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 지도층을 압박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강하다는 분석이지만 북한 주민들의 인권 향상에 도움이 된다면 마다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바라보는 일본의 인권 상황은? 강제 징용 근로자와 후손들이 60년 넘게 뿌리를 내리고 사는 교토(京都)의 우토로 마을엔 유엔 인권위원회의 인종차별특별보고관이 찾아 직접 현장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지구상에서 유엔 인권 보고관이 현장 조사를 벌이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 전에 일본 스스로가 ‘인권 요주의’ 국가라는 점을 잊지 말라는 얘기다.
박원재 도쿄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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