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전 구속돼… 러 HIV 모임 이끌어▼
▽옛 소련 최초의 공식 감염자=1987년 옛 소련 당국은 “우리는 에이즈 청정국가”라는 기존의 주장을 굽히고 공식적으로 첫 HIV 감염자가 발생했다고 시인했다. 이 사건의 주인공 니콜라이 판첸코(53) 씨는 현재 HIV 감염자 모임을 이끌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그가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동성애자였던 그는 출장 중 만난 한 동양계 남성 때문에 HIV에 감염됐다. 러시아 서부 칼리닌그라드에서 경찰관으로 일하던 그는 즉시 파면되고 감옥에까지 갇혔다. 당시 소련 당국은 동성애자나 HIV 감염자를 무조건 감옥에 보내던 시절이었다.
석방된 후에도 당국의 감시와 주변의 냉대를 견디다 못해 고향을 떠났고 이혼했다.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온 그는 1996년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HIV 감염자 모임을 만들고 활동을 시작했다. 판첸코 씨는 현지 언론과의 회견에서 “꼭 80세까지 살며 많은 일을 하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결혼해서 건강한 아이 낳는게 꿈▼
![]() 이잠바예바 씨 |
▽‘미스 에이즈’=1일 제1회 ‘미스 긍정(miss positive)’ 대회 시상식이 열린 모스크바 시내 포드발극장. ‘미스 긍정’ 스베틀라나 이잠바예바(24) 씨가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이 차분해졌다. 다른 미인 대회에서처럼 들뜨고 화려한 분위기는 찾을 수 없었다.
민간 에이즈 퇴치 기구들이 에이즈 환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준비한 이 대회에는 30여 명의 HIV 보균 여성이 참가했다. 입상한 다른 2명의 여성은 실명도 밝히지 않았고 시상식에도 나오지 않았지만 이잠바예바 씨는 “HIV 보균자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러시아 중부 체보크사리에서 미용사로 일하는 그는 2002년 바닷가 휴양지에서의 ‘하룻밤 사랑’으로 감염됐다. “8년밖에 더 살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절망했지만 곧 용기를 되찾았다. 그는 “현대의학의 발달로 HIV 감염 여성도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다”며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싶다”고 밝혔다.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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