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 핀터 “부시-블레어 법정 세워야”

  • 입력 2005년 12월 9일 02시 59분


올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영국 극작가 해럴드 핀터(사진)는 7일 런던에서 녹화된 1시간 분량의 수상 기념 연설에서 특유의 독설로 거짓 정보에 근거를 둔 이라크 침공의 부도덕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핀터는 건강이 나빠 10일 스웨덴에서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한다.

다음은 연설 요지.

1958년 난 이렇게 썼다. ‘진실과 거짓의 명확한 구분은 어렵다. 모든 것이 진실 아니면 거짓인 것은 아니다. 진실이면서 거짓일 수 있다.’ 작가로서 난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시민으로서는 아니다. 시민으로서 난 이렇게 물어야 한다.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권력은 국민을 무지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거짓말의 거대한 태피스트리(tapestry·색실로 짠 주단)다.

이라크전을 정당화한 것은 사담 후세인에게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이라크가 알 카에다와 관계를 갖고 있고 9·11테러에 책임이 있다고 들었다.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실이 아니었다.

전후 소련과 동유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오늘날 누구나 알고 있다. 모든 것이 이제 기록돼 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미국이 저지른 범죄는 피상적으로만 기록돼 있다.

미국은 니카라과의 잔인한 소모사 정권을 40년 이상 지원했다. 반군인 산디니스타들은 1979년 이 정권을 뒤엎었다. 그들은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 안정되고 다원적인 사회를 세웠다. 사형은 폐지되고, 가난에 허덕이는 국민은 되살아났다.

이라크 침공은 뻔뻔스러운 강도 행위다. 이 침공은 거짓에 거짓을 쌓아서 언론과 국민을 속이고 이뤄진 것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를 국제형사재판소에 세워야 한다. 영리한 부시는 이 재판소를 비준하지 않았다. 그러나 블레어는 비준했다. 그를 바로 기소하는 것이 가능하다.

진실을 보려는 단호한 지적 결단은 우리의 의무다. 이런 결단이 없는 한 우리가 거의 잃어 가고 있는 인간의 존엄을 회복할 희망은 없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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