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日 갈등]“東아시아 패권 양보할수 없다”

  • 입력 2005년 12월 9일 02시 59분


《4일부터 7일까지 중국과 일본 정부는 가시 돋친 설전을 벌였다. 베이징(北京)에서 일본과의 회담 취소를 발표하면 도쿄(東京)의 고위층이 중국 측을 쏘아붙이는 장면이 되풀이됐다. 중국이 4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3(한국 중국 일본)’ 정상회의 기간에 열릴 예정이던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연기한다고 발표하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5일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문제는 외교 카드가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중국이 한중일 3국 외상회담에도 응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이 6일 전해지자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외상은 7일 “중국이 지적했다고 해서 참배를 그만두는 것은 한 국가의 총리로서 할 일이 아니다”고 맞받아쳤다. 그러자 쩡칭훙(曾慶紅) 중국 국가부주석은 “중-일 관계는 수교 이후 가장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며 전적으로 일본 탓이라고 강조했다.

▽본질은 동아시아 헤게모니 경쟁=중-일 갈등의 가장 표면적인 쟁점은 야스쿠니 문제. 물론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釣魚 섬) 영유권과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을 둘러싼 분쟁 등 다른 현안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 내면 마찰의 본질은 21세기 동아시아 주도권을 둘러싼 다툼이라는 게 외교 소식통들의 일치된 견해다. 일각에선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일본이 전례 없는 밀월 관계를 즐기는 점을 들어 중-일 갈등의 막후에는 일본을 대리인으로 내세운 미국이 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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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중국은 올해 초 미국과 일본이 양국 외무-국방장관 회담에서 대만 해협을 처음으로 공동전략 목표로 설정하자 “중국에 대한 내정간섭이며 주권침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일본도 중국이 동남아시아 각국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시도하자 ‘아시아의 소수파’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일본이 야스쿠니신사 참배의 정당성을 강변하면서도 한국에 대해서는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는 점. 아소 외상은 7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군사력에 대해 투명성을 요구하면서도 한국에 대해서는 “가치관의 기본을 공유하는 파트너”라고 치켜세웠다.

▽‘정랭경열(政冷經熱·정치는 냉랭하지만 경제는 뜨겁다는 뜻)’에 영향 미치나=야스쿠니 문제가 장기화되면서 ‘정랭경열’로 상징되는 중-일 간 경제 교류에도 이상기류가 감지된다.

중국 정부의 싱크탱크들은 일본의 우경화에 제동을 걸기 위해 정랭경열 원칙을 폐기하자는 보고서를 여러 차례 작성해 최고 지도부에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소식통들은 “정경분리를 포기하면 중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겠지만 일본이 입는 타격은 더욱 클 것”이라며 “최근 일본 경제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은 ‘중국 특수(特需)’ 덕택”이라고 전했다.

▽일본 차기 정권에서야 해결될 문제=야스쿠니 문제는 양국 모두 ‘자존심’이 걸려 있어 내년 9월까지인 고이즈미 총리의 임기 중에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

일본 언론들은 중-일 관계가 일본에서도 주요 관심사가 된 만큼 차기 총리 향배에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여론이 차기 총리로 온건론자를 선호할지, 아니면 강경파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 등으로 향할지는 의견이 엇갈린다.

베이징=황유성 특파원 yshwang@donga.com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ASEAN+韓中日’ 정상회의 미국참여놓고 또 충돌▼

중국과 일본은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릴 때마다 회의의 주도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여 왔다. 이런 양상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재연됐다.

다른 점이라면 지금까지는 아세안 가맹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통해 직접 구애 경쟁을 벌여온 반면 이번엔 ‘동아시아 공동체’의 참가 범위를 둘러싸고 충돌했다.

제1회 동아시아 정상회의를 겸해 1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는 이번 회의의 핵심 쟁점은 장차 미국의 참여를 허용할 것인지 여부다.

일본은 “미국을 떼어놓고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논할 수 없다”는 논리로 미국에 문호를 개방할 것을 주장한 반면 중국은 “동아시아 공동체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아시아 국가여야 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최대 동맹국인 미국을 등에 업고 공동체 논의를 유리하게 이끌려는 일본과 미국이 끼어들 경우 자국의 영향력 감퇴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중국의 속내가 팽팽히 맞선 것이다.

동아시아 정상회의의 참가국은 아세안 가맹국과 한중일 외에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 16개국.

당초 중국은 공동체 구축의 주체를 아세안+3으로 하되 미국에 추가 가입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선언문 초안에는 공동체와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지 말자는 입장이었다. 반면 일본은 16개국을 동등한 자격으로 공동체에 포함시키고 공동체 추진 의지도 명시할 것을 주장했다. 이에 따라 올해 아세안+3 정상회의는 선언문 내용을 놓고 막판까지 중-일 간 힘겨루기가 치열할 전망이다.

일본이 호주 등 역외 국가의 참여에 집착한 것은 중국이 ‘범화교 경제권’인 아세안과 각종 경제협력을 체결해 영향력을 키우자 이를 견제할 세력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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