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개막된 북한인권국제대회 참석차 방한한 제이 레프코위츠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가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면담을 신청했으나 성사되지 않아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레프코위츠 특사는 이날 통일부와 외교부를 차례로 방문해 실무급인 고경빈(高景彬) 통일부 사회문화교류국장과 천영우(千英宇) 외교부 외교정책실장을 대신 면담했다. 9일에는 유명환(柳明桓) 외교부 제1차관과 면담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일정 문제도 있는 데다 레프코위츠 특사(차관보급)의 직급이나 역할이 장관이 만날 정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비공식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전직 국무부 차관보나 전 주한 미대사 등 미국의 민간 전문가들도 그동안 한국의 고위 당국자들을 만나온 것에 비춰볼 때 레프코위츠 특사와 두 장관의 면담이 불발된 것은 그의 역할에 대한 정부의 불편한 심기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레프코위츠 특사와 유 차관의 9일 면담도 미국 측의 거듭된 요구로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면담은 외교부가 아닌 서울 모처에서 오전 7시 반 ‘티 미팅’을 갖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이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측이 레프코위츠 특사가 면담할 정부 인사의 급을 비롯한 의전 문제까지 관여했다”고 말했다. 북한인권국제대회에 대한 정권 핵심부의 의중이 레프코위츠 특사 면담자의 급을 정하는 데도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다른 정부 관계자도 “(6자회담 진전에 대한 위기감이 증폭되는 등) 민감한 시기에 레프코위츠 특사를 만나기 꺼리는 분위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천 외교정책실장은 8일 레프코위츠 특사를 약 45분간 면담한 자리에서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정착시키는 것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 같은 특수성을 감안해 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레프코위츠 특사는 ‘이해는 하나 공감할 수 없다’고 밝히고 한국 정부에 대북 인권 개선을 위한 더 적극적인 개입(engagement)을 촉구했다고 한다.
한편 이봉조(李鳳朝) 통일부 차관은 이날 “남북이 불안정하게 공존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인권 문제 제기를 체제 전복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어 정부의 공개적인 대북 인권 개선 요구는 남북 관계에 불안정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조기경보기]尹국방-美대사 ‘부품 수출’ 설전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와 윤광웅(尹光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23일 비공개 회동에서 이스라엘제 공중조기경보기(EX)의 일부 미제 장비에 대한 미국의 수출 승인 문제를 놓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8일 확인됐다.
복수의 군 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버시바우 대사는 국방부에서 윤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이 이스라엘 엘타사 EX 기종의 일부 미제 장비에 대한 미국의 수출 승인 검토를 요청한 것과 관련해 “미 정부는 요청을 공정히(fairly) 검토할 것이지만 관련 절차를 ‘인위적으로 바꾸는(manipulate)’ 것은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 정부는 자국 업체가 제3국에 무기를 판매할 경우 사전에 수출 승인을 밟도록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버시바우 대사의 발언은 엘타사 기종에 탑재될 EX 장비에 대한 수출 승인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윤 장관은 “만약 미 정부가 수출 승인을 공정하게 하지 않는다면 한국 국민은 미 정부가 한국의 EX 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장관은 또 “더 민감한 문제는 이로 인해 앞으로 한국이 미국 업체에서 무기를 도입하는 데도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엘타사의 EX 기종에 장착되는 일부 미제 통신장비는 수출 통제 품목으로 묶여 있어 미 정부가 수출승인을 하지 않을 경우 제3국에 판매할 수 없다. 국방부는 12일 획득개발심의회를 열어 조건 충족 대상 장비를 선정한 뒤 가격협상을 거쳐 연내에 최종 기종을 선정할 예정이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MS 제재]美법무부 “한국조치 지나치다”
미국 법무부는 7일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의 마이크로소프트(MS)에 대한 ‘끼워 팔기’ 제재가 지나치다고 밝혔다.
브루스 맥도널드 법무부 반독점담당 부차관보는 이날 성명을 통해 공정위의 소프트웨어 분리 판매 명령은 “소비자들이 선호할 수 있는 제품의 분리를 요구하는 것이어서 소비자 보호를 위해 필요 또는 적절한 수준을 넘어선 조치”라고 논평했다.
그는 “반미국 독점국은 한국 공정위에 불필요한 규제를 부과하지 않도록 균형 있는 결정을 내려줄 것을 권해 왔다”며 실망감을 표시한 뒤 “건전한 반독점 정책은 ‘경쟁업체’가 아니라 ‘경쟁’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3000여 개 정보기술(IT) 업체의 모임인 경쟁기술협회(ACT)도 성명을 내고 공정위 조치는 “미국 정부가 특정 스테레오 회사 제품과의 경쟁을 이유로 현대자동차에 스테레오 장착을 금지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영국의 컴퓨터 전문지 PC프로는 “이번 조치가 유럽연합(EU)의 제재와 매우 유사한 성격이지만 벌금은 훨씬 적다”고 소개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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