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개혁칼날 국회 겨냥

  • 입력 2005년 12월 9일 17시 08분


일본 사회의 기득권 집단을 겨냥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전방위 개혁에 다시 시퍼렇게 날이 섰다.

구조개혁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로 삼아 도로공단과 우정공단 민영화를 성사시킨 고이즈미 총리가 이번엔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겠다고 하자 정치권이 긴장에 휩싸였다.

고이즈미 총리는 7일 집권 자민당 간부들에게 "중의원은 480명에서 300명으로, 참의원은 242명에서 150명 정도로 줄이는 게 좋겠다"고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며 의원 정수 감축을 지시했다. 무려 38% 감축안이다. 한국이 2000년 총선 직전 국회의원 정수를 기존의 299명에서 273명으로 10% 감축했던 것과 비교하면 말 그대로 '혁명적인 발상'이다. 국회의원들의 반발이 심해 한국은 2004년 총선 때 다시 299명으로 되돌렸다.

자민당 일각에서 반발하는 조짐을 보이자 고이즈미 총리는 8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방자치단체 통폐합으로 지방의원 수가 1만명 이상 줄어들지 않았느냐"며 국회의원도 고통 분담에 동참하는 게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언론들은 고이즈미 총리의 최근 발언을 종합할 때 내년 9월말 임기를 마칠 때까지'철밥통'인 공무원 조직과 국회 개혁만큼은 꼭 마무리 짓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33만2000명인 중앙부처 공무원을 5년 안에 10% 감축하고 공무원 인건비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10년 안에 현재의 절반으로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 공무원조직 개혁안은 이미 마련해놓은 상태. 공무원 개혁에 대한 여론의 호응이 높자 여세를 몰아 일본의 대표적 특권 집단인 국회를 겨냥한 것이다.

특혜시비가 끊이지 않은 국회의원 연금도 의원 정수 감축과 함께 도마 위에 올라 있다. 10년 이상 재직한 의원에게 지급되는 의원연금은 재직 중 연간 130만엔을 불입하면 65세 이후 연간 410만엔을 받는다. 일반 국민연금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이어서 특혜라는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자 고이즈미 총리는 중진 의원들의 반발에 맞서 국회개혁의 상징적 조치로 의원연금 제도의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다.

국회의원 수 감축은 자민당에도 결코 유리한 제도가 아니라는 게 정계 소식통들의 분석이다. 중의원 수가 300명으로 줄고 비례대표제가 없어질 경우 각 선거구에서 한명씩만을 뽑는 '완전 소선거구제'가 돼 야당이 정권 교체를 이루기는 오히려 쉬워진다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고이즈미 총리의 '진짜 속내'를 놓고 갖가지 추측이 나돌고 있다. 더구나 고이즈미 총리는 중의원 총선거에서 압승한 직후인 9월말 제1야당인 민주당의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대표에게 '대(大)연정'을 제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고이즈미 총리가 총선 압승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큰 틀의 새판짜기'를 구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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