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佛 인종충돌’ 재현되나…백인-레바논계 폭력사태

  • 입력 2005년 12월 13일 03시 03분


호주 시드니에서 11일 백인과 레바논계 주민들 사이에 폭력사태가 발생해 경찰을 포함해 최소 31명이 부상하고 100여 대의 자동차가 파손됐다.

호주 정계에서는 지난달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인종갈등 충돌이 호주에서도 일어나는 게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발단=이번 사건은 4일 시드니 남부 크로눌라 해변에서 레바논계 청년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니 해변에서 축구를 하지 말라”며 제지하는 백인 인명구조원 2명을 폭행한 데서 시작됐다. 이 사건이 보도된 뒤인 7일에는 백인 주민 3명이 20∼30명의 레바논계 주민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가 맞았다.

이를 계기로 누군가가 ‘레바논계에 빼앗긴 크로눌라 해변을 되찾자’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했고 11일 5000여 명의 백인 주민이 해변에 집결했다.

▽폭력시위=처음에는 축제 분위기 속에 시위가 벌어졌으나 곧 술에 취한 200여 명의 주동자가 중동계 사람들을 마구 폭행하고 이들을 보호하려던 경찰과 부상자를 호송하려던 구급차까지 공격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시드니 남부지역에서 레바논계 청년들이 50여 대의 승용차를 타고 달려와 폭력사태가 확산됐다.

레바논계 청년들과 백인 청년들이 야구방망이와 병을 휘두르며 싸웠고, 이 과정에서 100여 대의 차량이 부서지고 화염병도 투척됐다. 경찰은 16명을 체포했으나 술에 취한 일부 백인 시위대는 12일 새벽까지 인종차별 구호를 연호하며 거리를 누볐다.

폭력사태는 인근 지역으로도 번졌다. 울루와레 지역에서는 한 백인 남자(23)가 중동계 청년들과 싸움을 벌이다 칼에 찔려 중태다. 브라이턴르샌즈 지역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호주 국기를 길거리에서 불태우는 게 목격됐다.

▽극우단체 개입설=경찰은 주변 지역 통행을 차단하고 경찰 수천 명을 투입해 비상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사건 직후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인종이나 외모, 민족성을 이유로 공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폭력을 비난했다.

뉴사우스웨일스 주 경찰청의 켄 모로니 청장은 “폭도의 상당수가 국기를 들고 국가를 불렀지만 호주인답지 않았다”면서 “여성과 구급대를 공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개탄했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지는 이번 폭력시위에 독일 신나치 집단과 연관된 호주 극우단체 ‘애국청년연맹’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호주 인구 2000만 명 중 중동계는 약 3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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