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雨期)여서 맑은 하늘을 보기 어렵고 도시 풍경도 우중충하다. 맑은 날 멋스럽게만 보이는 고색창연한 건물들도 이런 날에는 칙칙하게 보일 뿐이다. 파리지앵들은 그래서 겨울에는 밤을 즐긴다. 거리 곳곳을 수놓은 화려한 조명이 낮의 우울을 달래 주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파리의 밤은 ‘빛의 향연’이다. 시내 큰길은 물론 주택가 골목길도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빛나고 있다. 이쯤 되면 파리지앵들이 파리를 ‘빛의 도시’라고 부르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욱 화려해졌다. 파리 시청이 조성하는 ‘빛의 거리’가 지난해 5곳에서 올해는 12곳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파리의 겨울밤 풍경을 스케치했다.
건물 외관을 조명으로 장식한 갈르리 라파예트 백화점,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파리 시청 옆 ‘은하수’ 길.파리=김현진 사외기자 |
오페라 극장 뒤편. 갈르리 라파예트 백화점과 프랭탕 백화점이 나란히 있는 도로에선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번쩍거린다. 노란색 빨간색 전구를 붙여 만든 조명 장식으로 건물을 통째로 뒤덮은 갈르리 라파예트는 관광객들에겐 빠뜨릴 수 없는 볼거리.
프랭탕에는 붉은색의 조명이 건물 전체를 은은하게 감싸고 있다. 건물 벽에 내걸린 분홍색 파란색의 등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돋운다.
노트르담 성당과 퐁피두 센터 중간에 자리잡은 시청 옆길은 도로 전체가 ‘조명쇼’의 무대다. 하얀색과 주황색이 어우러진 수직등이 수백 m에 이르는 도로 위 허공을 촘촘하게 수놓고 있다.
이곳은 ‘빛으로 파리를 수놓는다’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조성된 ‘빛의 거리’ 12곳 중 하나다. 각각의 조명은 예술가들의 손길을 거친 작품으로 별도의 제목이 있다. 시청 옆길의 제목은 ‘은하수’.
장폴 사르트르를 비롯한 문인들이 즐겨 찾았다는 카페 드 플로르가 있는 생 제르맹데프레 대로(大路)에는 가로수를 이용한 작품이 설치됐다. 벌거벗은 나무에 작은 전등을 매단 것. ‘크리스털 비가 내린다’는 작품 설명처럼 빗방울이 나뭇잎에 곱게 내려앉은 모습이다. 빨간색 등은 ‘마음’을, 파란색 등은 ‘육체’를 상징한다.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가까운 파시 거리는 길바닥까지 무대로 활용했다. 해가 진 뒤 정시마다 에펠 탑의 조명쇼가 시작되면 이곳도 함께 빛난다. 길은 파란색 조명으로 뒤덮이고 건물은 노란색 불빛이 감싼다. 전체 조명 사이로 여기저기 별 모양이 새겨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이 밖에 파리 시는 몽마르트르 언덕이 있는 북쪽 18구에서 소르본대가 있는 5구에 이르기까지 길목 길목을 ‘빛의 거리’로 꾸몄다. 올해 파리 시가 정한 콘셉트는 너무 전통적이지도 않고 너무 전위적이지도 않도록 한다는 것. ‘빛으로 수놓은 도시의 심장’ ‘리볼리의 불꽃’ ‘겨울의 컬러’ 등 각각 다른 제목으로 빛의 향연을 감상하는 재미를 더해 준다.
대표적 볼거리인 샹젤리제의 조명은 올해도 변함없다.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자발적으로 조명 장식을 한 건물이 늘어났다는 점. 오랜 복구 끝에 지난달 문을 연 박물관 그랑 팔레의 유리 돔으로 비쳐 나오는 은은한 흰색 불빛도 샹젤리제의 조명과 대조를 이룬다.
겨울에 파리를 찾는 관광객이 명심해야 할 팁 한 가지. 낮에 체력을 많이 소진하면 안 된다. 밤이 길고 볼거리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또 하나 덧붙이면 관광 명소 외에도 구석구석 찾아 다녀라. 느닷없이 감탄사가 터져 나오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파리=김현진 사외기자 kimhyunjin517@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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