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간 가스분쟁은 이달 초 우여곡절 끝에 타결됐지만 우크라이나에는 후폭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가스전쟁은 2004년 말 오렌지혁명 이후 불거져 온 우크라이나의 국내외 갈등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친서방파 분열=가스분쟁 타결의 공과를 두고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과 율리아 티모셴코 전 총리로 갈라진 친서방 진영 내부에서 격한 정치공방이 벌어지면서 3월 총선에서 친러시아 정파가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얻을 전망이라고 LA타임스가 9일 보도했다.
유셴코 대통령은 가스분쟁 타결에 대해 “훌륭한 성과”라고 자축했지만 티모셴코 전 총리는 “철저히 국익을 저버린 것”이라고 비난했다. 여기에 오렌지혁명 스타인 비탈리 클리츠코 전 세계복싱평의회(WBC) 헤비급 챔피언마저 제3의 정당에 합류하면서 친서방 진영은 사분오열됐다.
이런 가운데 10일 의회는 내각을 해임하는 투표를 진행해 찬성 250표, 반대 50표라는 결과를 끌어냈다. 카자흐스탄을 방문 중인 유셴코 대통령은 즉각 투표가 불법이라며 수긍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총선을 2개월 앞두고 친서방 진영이 갈라지면서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총리가 이끄는 친러시아 정당이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따라서 유셴코 대통령은 총선 후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에서 야누코비치 전 총리를 새 총리로 하는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LA타임스는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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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함대 논란=가스분쟁 와중에 러시아 흑해함대의 세바스토폴 군항 사용권 문제가 새삼 불거지면서 세바스토폴을 둘러싼 서방 국가와 러시아 간 대결이 ‘제2의 크림전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이날 보도했다.
세바스토폴 항은 크림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부동항으로 역사적으로 러시아 영토였지만 1954년 우크라이나에 편입됐다. 당시 니키타 흐루시초프 서기장이 술에 취해 이런 실수를 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반세기 뒤의 소련 해체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
결국 우크라이나 영토로 남게 된 세바스토폴은 1997년 20년간 러시아의 사용권을 보장하는 조약이 체결되면서 여전히 러시아의 영향력 안에 있다. 지금도 도시 인구의 4분의 3이 러시아인이고 이곳의 우크라이나인들도 ‘러시아의 일부’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유셴코 정권이 들어서면서 조심스럽게 계약 변경 주장이 제기됐고 가스분쟁으로 양국 갈등이 표면화됐다. 보리스 타라슈크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우리 영토에서 러시아 국기가 나부끼고 러시아 무장순찰대가 활보하는 게 정상이냐”고 주장했고,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조약 수정은 불법이고 불가능하다”고 반격했다.
우크라이나는 궁극적으로 흑해함대의 퇴거를 원하지만 최소한 군항 사용료를 대폭 올리고 미국에도 똑같은 권리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세바스토폴을 포기한다는 것은 현재로선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인디펜던트는 덧붙였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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